[IN&OUT]12년 헌신한 여오현… 이제는 자유를 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7일 03시 00분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여오현(35·현대캐피탈)을 도대체 왜 넣었을까.

대한배구협회가 1일 발표한 남자대표팀 명단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다음 달 초 일본에서 열리는 2014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예선 최종라운드에 나갈 선수단에 그가 포함된 것이다.

국가대표로 기량이 좋은 선수를 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오현은 국내 최고의 리베로다. 문제는 여오현이 지난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런던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뒤였다. 당시 그는 “올림픽 무대에서 뛰고 싶었는데 세 번째 도전도 실패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아프다. 이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태극마크를 달지 않겠다”고 말했다. “꼭 필요하다고 부르면 생각해 보겠다”는 수사(修辭)적인 예의도 잊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이번 명단에는 대학 선수가 5명이나 포함돼 있다. 어차피 ‘드림팀’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공격수가 다 빠졌는데 ‘리베로 여오현’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닌 듯하다.

명단 발표 이후 여오현은 대표팀 박기원 감독을 만나 ‘뛸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협회는 ‘여오현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구단에 협조를 요청하고 선수를 설득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래도 합류하지 않으면 제재 등 후속 조치를 논의하겠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협회와 구단이 대표팀 선발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흔한 말로 ‘애국심’과 ‘구단 이기주의’의 충돌이다.

하지만 여오현의 경우는 다르게 봐야 한다. 그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대표팀에서 뛰었다.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앞장섰다. 이 기간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길어야 1년에 3개월 정도였다. 한 은퇴 선수는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 차출을 꺼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건 보상체계 개선 등을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 하지만 고참 선수들에게 태극마크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나이가 들면 몸 관리가 어렵다. 소속팀이라면 배려할 수 있지만 단기간에 성적을 내야 하는 대표팀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가정도 고려해야 한다. 남편과 오래 떨어져 있는 탓에 아내가 우울증을 겪는 선수도 봤다”고 말했다. 여오현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더는 국가대표에 미련이 없다. 후배들이 뛰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누구는 걱정을 한다. 다른 선수들도 여오현처럼 국가대표를 그만하겠다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기우일 뿐이다. 대표팀 은퇴 선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신성한 태극마크를 더는 달지 않겠다고 ‘감히’ 얘기하려면 그럴 자격을 갖춰야 한다. 여오현은 그럴 만한 선수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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