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국가대표 출신…신인드래프트서 고배 친구들은 대부분 프로 지명 받아 자존심 상처 처음 1군 호출 때 그제야 운동하는 보람 느껴
4강 위해 지금 우리 팀도 나처럼 시련 겪는 중 나 때문에 희생한 아빠·엄마·누나 고마워요
느긋하게 한참을 자다 일어났다. 이미 ‘두 구단이 널 지명하고 싶어 한다’는 귀띔을 받은 터였다. 그런 얘기가 들리면 99%는 확실한 거라고들 했다. 내심 5라운드 안에는 이름이 불리지 않을까 싶었다. 눈을 뜨면 어엿한 프로선수가 돼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쿵.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 어느 팀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멍했다. 2010년 8월 16일, 2011년 프로야구 신인지명회의가 열리던 날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와 아빠를 졸라서 시작했던 야구. 학교 형들과 친구들이 유니폼을 입고 야구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공부 열심히 하면 야구선수 시켜준다”고 해서 늘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집에 오는 학습지도 빼먹지 않고 풀었다. 그런데 그 이후 처음으로 ‘내가 왜 야구를 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당장 ‘이제 앞으로 뭐 하고 살지’ 싶었다. 그렇게 칠흑보다 더 암담한 밤이 지났다.
바로 다음 날, 넥센 스카우트팀장이 집에 찾아왔다. 신고선수로 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했다. 구단 대표가 문우람을 좋게 평가했다고도 했다. 이전부터 오라고 했던 대학교에 입학할까도 싶었지만, 프로를 향한 오랜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고민했다. 결심이 섰다. ‘그래, 피하지 말고 가서 보여주자.’ 서너 팀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자주색 유니폼을 입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지금 그는 당당한 넥센의 주전 선수다. 외야수 문우람(21) 얘기다.
● 청소년국가대표가 겪은 ‘프로 미지명’…전화위복으로!
문우람은 201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였다. 유창식(한화), 임찬규(LG), 이태양(NC), 심창민(삼성), 정진기(SK) 등이 당시 멤버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고 보람찼던 추억. 그러나 그해 송년회에서 문우람은 조금 기가 죽었다.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미 프로 지명을 받은 뒤였기 때문이다. “전 신고선수로 들어갔잖아요. 그런데 계약금을 많이 받은 친구들이 밥을 사고, 또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계약금이나 프로 얘기가 나오니까 더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하기도 했죠.” 시기나 질투는 아니다. 문득 깨달은 현실이 쓰라렸던 것이다. “다들 두루두루 친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었어요. 단지 내가 그렇게 열심히 야구하고도 이렇게 10원 한 장 못 받고 겨우 프로에 들어갔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여전히 그 겨울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속부터 상한다. 당연히 오기도 생겼다. 그게 오히려 힘이 됐다. ‘앞으로 꼭 성공해서 내 진짜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품었다. “힘들면 늘 그때를 생각했어요. 그러면 초심으로 돌아가게 돼요.” 그러니 전화위복이다.
● 2군에서 흘린 귀한 땀, 1군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
마침내 프로에 왔다. 많은 게 달라질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전남 강진의 외진 숙소에서 살면서 규율이 엄한 단체생활을 했다. 땡볕에서 매일 구슬땀을 흘렸다. 프로의 ‘자유’에 대한 막연한 상상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일까. 지난 시즌 처음 1군의 호출을 받았을 때 비로소 느꼈다.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아, 여기서 야구하면 운동하는 보람이 있겠구나.’ 올 시즌 초 2군에서 출발했지만, 그렇게 좌절하진 않았어요. ‘내가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 부족한 부분을 잘 메워서 얼른 1군에 올라가자’는 생각만 했죠.” 그러다 6월 22일, 마침내 기회가 왔다. 시즌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그때부터 그야말로 ‘문우람 돌풍’이 몰아쳤다. 그가 올라온 날 넥센은 8연패를 끊었고, 스스로도 신들린 듯 안타를 만들어냈다. 일시적 활약도 아니었다. 꾸준했다. 염경엽 감독이 공개적으로 ‘복덩이’라고 불렀다. LA 다저스의 ‘쿠바 돌풍’ 야시엘 푸이그에 빗대 ‘문이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어느새 두 달째 선발 라인업에 고정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기약도 없이 2군에서 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을 보여줬다. 문우람은 말했다. “계속 경기에 나가다 보니 이전에 내가 알던 야구보다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한 달도 아닌, 고작 몇 경기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깨닫는 게 달라져요. 이래서 다들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 팀의 4강 확신하는 긍정 마인드…“가을에 목숨 건다”
요즘 넥센은 시즌 초중반의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완연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시즌 40승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팀답지 않다. 1위는커녕 4위 자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우람도 “자꾸 ‘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같이 말려드는 것 같다. 경기 도중 초반에 점수를 많이 주면 ‘이러다 지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자꾸 온다”고 털어놓았다. 잘해야겠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야구다. 그래서 더 힘들다. ‘안타를 치고 나가야 뒤에 나오는 형들이 잘 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해질 때도 많다. 그러나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는 늘 좋은 흐름과 안 좋은 흐름이 교차한다는 걸 몸으로 익히는 중이다. 아니, 인생사 또한 마찬가지라는 걸 이미 배웠다. 그는 “고3 때 청소년국가대표까지 발탁되면서 ‘아, 야구가 이렇게 잘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프로 지명이 안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그 자만심으로 프로에 왔다면 더 독이 됐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최근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 팀이 4강에 가기 위해 지금 이런 시련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생각하면 인생은 물 흘러가듯 사는 게 정답이잖아요. 잘 되는 것도 흘러가는 거고, 안 되는 것도 흘러가는 거고. 6월에 8연패를 한번 했고, 지금이 우리의 두 번째 위기인 것 같아요. 그러나 이게 끝나면 연승이 이어지고 결국은 우리가 4강에 들어가 있을 거라 믿어요.” 눈을 또릿하게 빛내면서 긍정의 기운을 술술 풀어놓는다. 물론 “포스트시즌에 나가게 되면 무조건 ‘목숨’을 걸 거다”라는 당찬 각오도 함께였다.
● ‘엄청’ 고마운 가족, 야구 잘하고픈 첫 번째 이유
문우람은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가족’ 얘기다. 20년이 갓 지난 청년 문우람의 인생에서 어쩌면 전부였을지도 모르는 존재. “아빠랑 엄마, 그리고 우리 누나가 저 때문에 희생한 게 정말 ‘엄청’ 많아요. 그래서 늘 ‘엄청’ 고맙고 ‘엄청’ 미안하고요. 아들 하나 잘 키우시려고 우리 부모님이 빚까지 져가면서 힘들게 뒷바라지 하셨어요.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전적으로 우리 가족 때문이에요.” 그가 앞으로 오래오래 야구를 잘하고 싶은 이유 가운데 ‘1번’도 단연 가족이다. “앞으로 잘 되면 아빠, 엄마, 누나한테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까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 거예요. 효도하고 싶어요, 저.” 잘 자란 막내가 땀을 훔치며 배시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