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는 출범 이후 승리가 없었다. 따라서 페루전 화두는 홍명보 감독의 첫 승 여부였다. 4번째 A매치. 지휘봉을 잡자마자 치른 7월 동아시안컵은 초라했다. 2무1패, 한 골에 그쳤다. 그 여파로 국제축구연맹(FIFA) 8월 랭킹이 6년여 만에 50위권 밖(56위)으로 떨어졌다. 앞서 A대표팀을 이끈 대다수 감독들이 금세 첫 승을 올린 과거를 감안하면 홍 감독의 행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홍 감독에게 바통을 건넨 최강희 전 감독(전북)도 첫 번째 A매치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홍 감독도 “결과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이심전심. 제자들은 스승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페루전도 승리의 여신이 외면했다. 무득점 무승부는 아직 답답했다.
● 생존
내년 브라질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23명이다. 대회 규정에 따라 골키퍼 3명을 제외하면 20명이 본선에 설 수 있다. 교체를 감안해도 한 포지션에서 많아야 2명이다. 이번 홍명보호 2기도 동아시안컵처럼 한중일 아시아권 선수들로 구성됐다. 출중한 유럽파와 중동에서 활약 중인 동료들이 합류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이를 의식한 때문일까. 태극전사들의 퍼포먼스는 화려했다. 빠른 패스와 돌파, 언제 어디서든 시도되는 슛은 날카로움을 더했다. 특히 이근호(상주)-윤일록(상무) 등 공격수들의 과감함이 인상적이었지만 2% 부족했다.
● GK
정성룡(수원)은 2010남아공월드컵을 기점으로 넘버원 수문장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때론 미래를 위해 변화도 필요한 법. 페루전이 타이밍이었다. 처음 태극마크를 단 김승규(울산)가 나섰다. 소속 팀에서도 선배 김영광 대신 주전을 꿰찬 그는 19경기 16실점으로 0점대 방어율을 보였다. A대표팀 김봉수 GK 코치도 “(김)승규가 나이에 비해 순발력과 판단력이 좋다”고 칭찬했다. 김승규는 정성룡-이범영(부산)에 밀려 작년 런던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엔트리에 뽑혔음에도 출전하지 못한 이범영보다 A매치 데뷔가 빨랐다. 김승규는 전·후반 막판 한 차례씩 기습 로빙슛을 선방하는 등 만족스러운 90분을 보냈다.
● 남미
페루는 홍명보호가 처음으로 아시아를 벗어난 A매치 상대였다. 양 국 모두 윈-윈(Win) 게임이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예방접종을 미리 했다. 아직 상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려한 개인기를 강점인 남미 축구를 미리 경험하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다. 페루는 시차 등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해 주도권을 한국에 내줬지만 간헐적인 역습은 인상적이었다. 페루도 소득이 있었다.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4승2무6패(승점 14)로 7위에 랭크, 남은 경기에 따라 5위를 노릴 수 있다. 이 경우, 아시아 5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벌이는데 한국은 아시아 전통의 강호로 최적의 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