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24·제주 유나이티드)와 그의 아버지 홍귀광(52) 씨 모두 여름에 태어났다. 홍정호는 양력, 아버지는 음력을 쇠기 때문에 생일이 겹치는 해도 있었다. 작년 여름은 이들 부자에게 잔인했다. 홍정호는 자신의 생일인 8월12일, 제주 고향집에서 올림픽대표팀이 동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TV로 지켜봤다. 그는 “작년 생일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 팀이 메달을 따서 누구보다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 4월 당한 큰 부상이 아니었다면 홍정호도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마음이 쓰릴 수밖에 없다. 얼마 후 아버지 생일 때 홍정호는 재활을 위해 독일에 있었다.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 한 게 전부였다. 1년 후. 올해 홍정호 생일은 A대표팀 소집 날이었다. 그는 정장 차림으로 당당히 입소했다. 그날 저녁 선수단이 준비한 작은 생일파티도 열렸다. 홍 씨 생일은 아들보다 1주일 늦은 8월19일. 전날 대구FC와 정규리그 23라운드를 마치고 하루 휴가를 얻은 홍정호는 “오늘 저녁은 제가 사기로 했다. 아버지께서 드시고 싶다는 건 다 사 드려야 겠다”고 웃음 지었다.
● 대표팀 복귀 수비 안정
홍정호의 올해 목표 중 하나는 6월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때 다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늦은 FA컵 32강 때(5월8일) 1년 여 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6월 대표팀 승선은 좌절됐다.
6월 말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정식 취임했다. 깊은 인연을 가진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홍정호는 “느낌은 반반이었다. 기대도 됐지만 두렵기도 했다”고 했다. 홍 감독이 선수를 뽑을 때 철저히 실력만 볼 거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얼마 전에 그라운드를 밟은 자신이 과연 뽑힐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홍 감독은 7월 동아시안 컵 때 홍정호를 전격 발탁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는 “공백이 길어 게임도 못 뛴 선수가 어떻게 대표팀이 됐냐는 말 안 나오도록 더욱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밝혔다.
홍정호 합류 후 대표팀 수비는 안정을 찾았다. 동아시안컵 3경기와 14일 페루와 평가전까지 4경기 2실점. 홍정호는 3경기에서 풀타임을 뛰며 확실한 부활을 알렸다. 수비가 합격점을 받은 반면 대표팀은 골 가뭄 때문에 호된 비판을 듣고 있다. 4경기에서 고작 1골이다. 홍정호는 “그래서 수비가 계속 무실점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잘 막아주면 언젠가는 공격수들이 넣어 줄 것이다”고 개의치 않아 했다. 이어 “홍 감독님이 많이 힘드실 텐데 절대 선수들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신다. 지금 당장이 아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이니 좀 더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 제주의 상위 스플릿 위해
대표팀도 대표팀이지만 소속 팀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제주는 18일 대구와 비기며 8위로 처졌다. 남은 전북-부산-대전 3연전 결과에 따라 상위 스플릿(1∼7위)에 남느냐 하위 스플릿(8∼14위)으로 떨어지느냐가 판가름 난다. 일단 무실점 수비가 중요하다. 홍정호 어깨가 더욱 무겁다. 홍정호는 “요즘 세트피스 수비 실점이 많아 박경훈 감독님이 많이 고민하신다. 감독님 스트레스를 좀 덜어드리고 싶다.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질 일은 없을 거다. 올 시즌이 3경기 남았다는 생각으로 나머지 경기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