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상어 떼 바다 건너 3전4기 쿠바 탈출 그의 공은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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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12일 07시 00분


■ 마이애미 호세 페르난데스

어머니·여동생과 망명 시도…3번의 감옥행
탈출도중 바다에 빠진 어머니 목숨 구한 효심
치니아코치 지옥트레이닝…파워·유연성 키워

작년 14승1패 싱글A 평정 후 올해 빅리그행
방어율 2.23 ML 전체 2위 호투…신인왕 찜


지난달 20일(한국시간) 말린스스타디움에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루키 투수들의 흥미로운 선발 맞대결이 펼쳐졌다. 5연승을 달리며 LA 다저스 선발진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류현진(26)과 최고 시속 99마일(159km)의 강속구를 던지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신성 호세 페르난데스(21)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류현진은 7.1이닝 6안타 5탈삼진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하고도 패전의 멍에를 쓴 반면 페르난데스는 6이닝 동안 삼진을 8개 잡아내며 2실점(1자책점)으로 다저스 타선을 봉쇄하며 말린스의 6-2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팬들은 흰색 하의 오른쪽 엉덩이 부분만 유난히 검붉은 색으로 변해버린 페르난데스의 유니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을 듯하다. 공을 던질 때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로진백을 사용하는 대신 마운드의 흙에 손을 문지른 뒤 엉덩이 부분에 닦아냈기 때문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 쿠바에서 야구할 때 로진백이라는 것을 구경조차 한 적이 없었던 페르난데스는 땀이 찰 때마다 맨땅의 흙에다 손을 비벼대던 습관을 메이저리거로 성장해서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1992년 7월 31일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의붓아버지 라몬 히메네스는 2005년 쿠바를 탈출해 플로리다주 탬파에 정착했다. 페르난데스도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쿠바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린 나이에 감옥에만 세 번이나 갔지만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가야만 한다는 페르난데스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마침내 2008년 네 번째 시도 만에 쿠바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조그만 배를 타고 플로리다로 향하는 도중 어머니가 바다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상어 떼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페르난데스는 곧장 물로 뛰어들어 어머니의 생명을 구해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어린 페르난데스에게 야구는 생명과도 같았다. 가난한 망명자의 삶이었지만, 아버지는 페르난데스의 재능을 살려주기 위해 올란도 치니아 코치를 찾아갔다. 치니아 코치는 로란도 아로요, 올란도 에르난데스, 리반 에르난데스, 호세 콘트레라스 등 쿠바 출신 망명자들을 메이저리거로 키워낸 전설적 인물이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너로 5년간 일한 경험을 갖고 있는 치니아 코치는 큰 체격을 앞세워 파워만을 강조하는 미국과는 달리 완벽한 투구동작을 통해 효율적으로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구사하는 일본 스타일이 투수들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믿음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치니아 코치와 함께 지옥훈련에 돌입한 페르난데스는 파워를 키우기 위해 2파운드(0.9kg)짜리 무거운 볼을 120피트(36m)까지 던졌고, 가파른 언덕을 뛰어 올랐다. 1주일에 2번은 주차장에서 승용차나 트럭을 100피트(30m)나 밀며 근육을 단련했다. 쿠바 출신 선수들의 전매특허는 몸의 유연성이다. 치니아 코치는 쿠바 스타일과 일본 스타일을 섞어 페르난데스의 투구동작을 만들어나갔다. 1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스트레칭으로 시작되는 훈련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치니아 코치의 조련으로 초고교급 투수로 명성을 떨친 페르난데스는 고교 졸업반 때 노히트노런을 2차례나 달성하며 13승1패, 방어율 2.35를 기록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말린스는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4번째로 지명하며 200만달러(약 22억원)의 사이닝보너스를 지급했다.

지난 시즌 페르난데스는 싱글A를 완전히 평정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싱글A 소속에 불과했지만, 2012년 올스타 퓨처스게임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총 134이닝을 던져 15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14승1패, 방어율 1.75의 놀라운 성적을 올려 말린스 구단 마이너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당초 페르난데스는 2013시즌을 더블A에서 맞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파이어세일을 통해 팀 리빌딩을 선언한 말린스는 쿠바 출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페르난데스를 25인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지난 43년간 드와이트 구든, 제러미 본더먼, 릭 포셀로에 이어 싱글A에서 빅리그로 직행한 4번째 선수가 된 것이다.

4월 8일 뉴욕 메츠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페르난데스는 5이닝 동안 삼진을 8개나 잡으며 3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다. 1916년 이후 21세 이하의 투수가 빅리그 데뷔전에서 8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낸 7번째 사례였다. 5경기에서 2패(방어율 4.50)만을 당한 채 4월을 마친 그의 메이저리그 첫 승은 5월 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나왔다. 7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으며 1안타 무실점으로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5승5패, 방어율 2.75로 전반기를 마친 페르난데스는 말린스를 대표해 내셔널리그 올스타로 뽑히는 감격을 누렸다. 내셔널리그 5번째 투수로 6회초 마운드에 올라 아메리칸리그 2번타자 더스틴 페드로이아(보스턴 레드삭스)를 루킹 삼진, 3번타자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1루수 플라이, 4번타자 크리스 데이비스(볼티모어 오리올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요리하며 이닝을 마쳤다.

후반기에도 페르난데스의 활약에는 쉼표가 없었다. 7월 29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삼진 13개를 잡았고, 8월 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선 빅리그 데뷔 후 개인 최다인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0년 이후 랜디 존슨(3차례), 페드로 마르티네스, 커트 실링, 마크 프라이어, 박찬호에 이어 2경기 연속으로 삼진 12개 이상을 잡아낸 6번째 투수가 됐다. 9월 7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7이닝 1안타 9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11승째(6패)를 챙긴 페르난데스는 방어율도 2.23으로 낮춰 이 부문 메이저리그 전체 1위 클레이튼 커쇼(다저스·1.92)에 이어 2위에 랭크됐다.

6월 이후 9승1패, 방어율 1.51로 경이적 성적을 올리고 있는 페르난데스는 동향의 야시엘 푸이그(다저스), 류현진 등을 따돌리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은 페르난데스가 내년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한 절박함이 더해진 페르난데스의 공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쉽게 공략하기 어려운 마구로 오랫동안 남을 듯하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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