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배구가 예상됐던 패배를 당했다. 한국은 28일 중국에서 벌어진 2014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여자배구선수권 아시아 최종라운드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카자흐스탄(세계랭킹 28위)에 세트스코어 1-3(25-21, 22-25, 17-25, 14-25)으로 졌다. 세계랭킹 10위의 한국은 19일 벌어진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카자흐스탄에 3-0으로 완승했다. 같은 선수로 구성된 대표팀이 9일 만에 벌어진 다른 대회에서 같은 상대에 패한 이유가 있었다. 에이스 김연경의 몸 상태가 나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선수권 본선진출에 대한 열망의 차이였다. 한국은 꼭 이겨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내년 세계선수권 본선 일정이 9월 막을 올리는 인천아시안게임과 겹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은 인천에서 금메달이 목표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본선에 참가하면 대표팀을 2원화해야 한다. FIVB규정대로라면 이번 대회 출전엔트리 11명(당초 12명이었으나 부상으로 여고 2년생 이다영은 제외됨) 가운데 9명 이상을 본선대회에 참가시켜야 한다. 현재 대표팀 후보명단으로는 1,2진을 꾸리기도 힘들다. 억지로 한다 해도 주전 대부분은 세계선수권 본선에 가야하고 아시안게임에는 프로팀의 비주전이 나가야 한다.
이런 탓에 대회를 앞두고 “협회가 지고 오라고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제17회 아시아여자선수권에서 3위를 기록한 뒤 귀국해 하루만 쉬고 다시 출국한 선수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선수들은) 협회가 미워서라도 이번에 꼭 이기겠다고 한다”는 풍문도 돌았다.
스포츠동아는 26일 대한배구협회 이종경 전무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이 전무는 “고민을 한 것은 맞지만 지고 오라고 하지 않았다. 고의패배는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니다”고 했다. 대신 하소연을 했다.
내용은 이랬다.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은 세계선수권에 더 비중을 둔다. 우리는 이번이 기회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전 국민의 관심사다. 선수들에게는 연금이라는 실익도 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4강 진출도 사실상 힘들다. 선택과 집중 외에는 길이 없다.”
이런 난처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FIVB에 영향력을 행사해 경기일정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정하면 되지만 김연경 사태에서 드러났듯 대한배구협회의 외교역량은 허약하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단의 마음에는 열정이 사라졌다. 한국은 29일 인도를 3-0으로 꺾고 2승1패를 기록했지만 10월1일 중국에 3-0으로 이기지 않는 한 본선진출은 불가능하다. 이번 대회는 A, B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나간다. 21일 벌어진 아시아선수권 3∼4위 결정전에서는 중국에 먼저 2세트를 내주고도 3-2로 역전승을 했다. 그 때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번에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