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산타즈 박원준 감독(왼쪽)과 선수인 아내 이미라 씨. 이들은 감독과 선수 이전에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부부’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안양 산타즈 박원준·이미라 씨
야구 선수 조카 덕에 만나서 결혼에 골인 남편 팀 창단하자 마흔 넘어서 야구 시작 둘째 아들도 중앙대 재학 중인 야구 선수 “가끔 남편에 뛰고 싶다고 떼를 쓰곤 하죠”
2010년 11월 창단된 안양 산타즈는 안양은 물론 주변의 과천·의왕지역까지 포괄해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40대 선수도 여럿 있을 정도로 연령층이 다양하다. 2011년부터 공식경기에 나선 산타즈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단 한 번도 전국대회에 빠지지 않아 ‘모범야구단’으로 불린다. ‘몰래산타’ 활동을 펼치는 마음씨 착한 선수들로 구성돼 팀명도 산타즈다. 창단 때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박원준(53) 감독은 현재 한국리틀야구연맹 홍보이사도 맡고 있다. 눈길을 끄는 사실은 그의 아내 이미라 씨(52) 또한 산타즈 소속 선수라는 점이다. 유례를 찾기 힘든 ‘남편은 감독, 아내는 선수’인 야구부부다. 2013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주최 LG전자·익산시, 주관 한국여자야구연맹·익산시야구협회)에 출전한 산타즈가 공식경기 12전13기 끝에 첫 승을 거둔 지난달 28일, 전북 익산 국가대표야구전용훈련장에서 ‘야구부부’를 만났다.
● 야구로 인연 맺은 ‘야구부부’
배재중·고교와 중앙대에서 선수생활을 한 박원준 감독은 이후 학사장교로 군생활을 마쳤다. 이때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 야구선수가 있어 가끔씩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 부모는 아들을 돌봐주는 성실한 청년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자리를 함께하다 박 감독에게 신붓감을 추천했고, 두 사람은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초등학생의 어머니는 바로 이미라 씨의 친언니였다. 이 씨는 “조카가 야구선수를 한 덕분에 남편을 만났다. 우리 부부에게 야구는 운명과도 같은 존재”라고 밝혔다.
● 남편은 감독, 아내는 선수
박 감독이 산타즈를 창단하자 이 씨는 “나도 직접 야구를 해보고 싶다”고 했고, 남편은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야구를 시작한다는 아내의 뜻을 선뜻 받아들였다. 주말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여자야구단의 특성상, 함께 야구를 한다면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여자들로만 구성된 야구단에서 아내가 감독과 다른 선수간의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란 현실적 바람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아내의 포지션은 투수. “나이 먹고 시작해서 그런지 왜 그렇게 포수 미트가 멀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마음대로 볼이 가지 않는다”는 이 씨는 “그래도 마운드에 서고 그라운드에 서면 가슴이 뛰고 설렌다. 야구가 그래서 좋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창단 3년 만에 공식경기 첫 승을 거둔 안양 산타즈 선수단이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앞줄 오른쪽 2번째가 박원준 감독. 익산|김민성 기자 ● 나는야 ‘투수 엄마’
둘째 아들 지훈은 현재 중앙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야구선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의 포지션도 투수. 박 감독은 내야수 출신이지만, 아내와 아들은 투수다. 이 씨가 야구를 직접 하고, 특히 투수를 하게 된 것은 아들의 영향이 컸다. 둘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도, 엄마도 처음엔 야구를 하겠다는 아들을 말렸다. 특히 아빠의 반대가 심했다. 너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고 밝힌 이 씨는 “한때 지훈이가 마운드에서 폭투를 하고 점수를 많이 주면 ‘왜 저렇게밖에 못 할까’라고 속상해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야구를 한 뒤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게임에 뛰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은 어떤 마음일지, 마운드에서 점수를 주고 쓸쓸히 내려오는 투수는 어떤 생각을 할지, 내가 직접 선수로 뛰면서 이젠 그런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들과 남편 덕분에 시작한 야구가 더 좋아진 이유다.
‘야구인 집안’이라 집 안의 TV는 하루 종일 야구 채널에 고정돼 있다. 이 씨는 “아들도 투수고, 나도 투수라서 그런지 이상하게 패전투수가 된 프로선수들만 봐도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투수 엄마’로서 마음 속 깊은 곳에 품은 꿈도 덧붙였다. “우리 지훈이가 오승환(삼성) 같은 멋진 투수가 됐으면 좋겠다.”
● 아내에게 더 엄격한 남편
산타즈 소속 선수들 중에는 고교 3학년인 김송희 등 이 씨의 자식뻘 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뒤늦게 직접 야구를 시작했지만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주전으로 뛰기는 힘들다. 이 씨는 팀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결원이 생겼을 때 그 빈자리를 메우는 정도다. 그렇다고 ‘게임 욕심’이 없을 수는 없을 터. 가끔 남편에게 ‘대타로라도 한 번 뛰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 그러나 감독인 남편 입장에선 쉽게 아내의 바람을 들어줄 수가 없다. 유니폼을 입으면 남편이 아닌 감독이기 때문이다.
산타즈가 공식경기 12전12패의 사슬을 끊고 이화 플레이걸스에 23-8로 이겨 감격적인 창단 첫 승을 거둘 때, 이 씨는 한번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남편이 3루 코치석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할 때, 아내는 1루 코치석을 잠시 지켰을 뿐이다. “아내가 대타로라도 뛰고 싶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여자야구는 흐름이 순식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다. 남편으로선 아내를 뛰게 해주고 싶었지만, 감독으로선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게 박 감독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