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투구 내용은 좋지 않았지만, 제가 나가면 늘 팀이 이겼잖아요. 오늘 꼭 제가 나가겠습니다.”
넥센 손승락(사진)은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8일 1차전과 9일 2차전에 연이어 등판했다가 동점을 허용하거나 리드를 빼앗겨 경기를 어렵게 만들었던 데 대한 자책이었다. 넥센이 1·2차전에서 승리해 짐은 조금이나마 덜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 쪽에 부담으로 남은 듯했다. 3·4차전을 팀이 모두 패하면서 만회할 기회가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손승락은 최종 5차전에서 온 몸을 불살랐다. 넥센이 0-3으로 뒤진 9회초 등판해 1이닝을 실점 없이 무사히 막은 그는 팀이 9회말 박병호의 3점홈런과 함께 동점을 이룬 뒤 연장 10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3이닝을 더 던지면서 살얼음판 같은 3-3 동점을 지켰다. 9회부터 12회까지 무려 4이닝을 막아내면서 2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투구수는 64개에 달했다. 손승락의 올해 정규시즌 한 경기 최다 투구수가 32개였으니, 정확하게 2배였다. 이날 선발투수였던 브랜든 나이트의 투구수(66개)와 대등했다. 올해 구원왕에 오른 넥센의 소방수는 마지막 순간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승리투수의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다. 손승락이 마운드를 내려간 연장 13회초 넥센은 결국 5점을 내줘 올해의 마지막 패전을 안았다. 손승락의 4이닝 역투도 아쉽게 물거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