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씨(31)는 16일 직장에서 하루 종일 ‘야구삼매경’에 빠졌다. 오전 9시부터는 류현진이 속해 있는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펼치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을 봤다. 이후 잠시 업무를 하다가 오후 6시부터는 한국프로야구 LG와 두산의 플레이오프(PO) 경기에 빠졌다. 이 씨는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컴퓨터 화면 구석에 조그맣게 인터넷 생중계창을 띄워두고 곁눈질로 봤다. 이달 초부터 이런 생활이 거의 매일 이어지고 있다.
10월 들어 대한민국은 야구로 아침을 열고 야구로 밤이 저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10월은 포스트시즌의 계절이지만 올해는 국내뿐 아니라 류현진이 속한 LA 다저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거의 하루 종일 야구팬들을 야구 중계로 빨아들이고 있다.
직장인들은 평소라면 최대한 빨리 점심식사를 마치고 개인시간을 가지지만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만큼은 다르다. 삼성물산 직원들은 15일 점심시간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옥 구내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TV만을 바라봤다. 류현진이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으로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승리투수가 된 직후 유모 씨(28)는 “원래 식당 TV는 뉴스 채널로 고정돼 있었는데 류현진이 나오는 날이면 야구경기를 틀어준다. 구내식당이 함성으로 뒤덮인 광경은 입사 이후 처음 봤다”며 웃었다.
프로야구 넥센과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열린 14일 저녁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에서 휴대전화로 야구중계를 켜놓고 중간고사 공부를 하던 두산팬 한태선 씨(28)는 두산이 3-0으로 앞서던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넥센 박병호가 동점 3점 홈런을 날리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표정만 찡그렸다.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소리를 끈 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웃거나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씨는 “중간고사가 다음 주인데 두산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 야구 때문에 공부하기 글렀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운전을 하면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보면 최대 7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할 정도로 운전중 DMB 시청은 위험하지만 택시운전사들도 야구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택시운전사 김모 씨(55)는 “넥센과 두산의 준PO 5차전이 열린 14일 앞에 있던 택시가 신호가 바뀐 뒤에도 한참 서 있길래 뭐하나 봤더니 DMB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중이 야구의 치열한 승부 현장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희비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면 자신감을 얻고 기분이 고양되는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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