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의 주전 유격수 김재호(28)는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아웃카운트 27개를 잡아냈다. 9이닝을 기준으로 한 경기를 이기는 데 필요한 아웃카운트는 27개. 결국 김재호 혼자 1승을 책임진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야구에서 수비의 목적은 실책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두산은 김재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5월 마지막 경기가 끝났을 때 두산은 22승1무22패(승률 0.500)로 5위에 처져 있었다. 시즌 개막 전 전문가들이 ‘3강 후보’로 치켜세우던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수비였다. 이때까지 두산의 범타처리율(DER·상대 타자가 때린 페어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하는 비율)은 65.2%로 한화와 함께 공동 최하위였다.
6월 1일 변화가 생겼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이날부터 손시헌(33)과 허경민(23)이 주로 나서던 유격수 자리에 김재호를 붙박이로 고정했다. 김재호가 주전 유격수로 나서면서 두산의 수비는 NC에 이어 리그 2위(범타처리율 69.4%)로 업그레이드됐다. 수비가 짜임새를 갖추면서 팀 승률도 0.605(49승2무32패)로 올라갔다.
방망이도 매서웠다.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김재호는 타율 0.315에 32타점을 기록하면서 ‘공포의 9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나머지 8개 팀 9번 타자 평균 타율은 0.230이었다. 9번 타자의 타율이 높으면 테이블세터(야구에서 1, 2번 타자를 함께 일컫는 말)에게 찬스가 많이 연결되는 게 당연한 일. 김재호가 9번에서 버티면서 두산은 타자에게 불리한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쓰면서도 팀 득점 1위(699점)를 차지할 수 있었다.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삼성 역시 주전 유격수 김상수(23)만 건재하다면 김재호와 맞불을 놓을 수 있었다. 시즌 전체로 볼 때 범타처리율에서 삼성(68.6%)은 두산(67.6%)에 앞서는 팀이다. 타율 0.298, 7홈런, 44타점을 기록한 김상수의 방망이 역시 김재호에게 뒤질 게 없었다.
문제는 김상수가 왼손 뼈 골절로 한국시리즈에 뛸 수 없다는 것.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일단 지난해 LG에서 건너온 정병곤(25)에게 한국시리즈 유격수 자리를 맡기기로 했다. 정병곤은 단국대 시절부터 수비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방망이에는 물음표가 붙었던 선수다. 통산 1군 경기 출장이 65경기밖에 안 될 정도로 경험이 부족한 것도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삼성 팬들은 프로 통산 타율이 0.230밖에 안 되는 백업 내야수 김재걸(현 삼성 코치)이 한국시리즈만 되면 방망이까지 펑펑 터지는 ‘걸사마’로 화려한 변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정병곤이라고 대학 선배 김재걸처럼 깜짝 스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김재호가 올 포스트시즌 최고 유격수 자리를 굳히느냐, 아니면 정병곤이 그 자리를 빼앗느냐에 올 한국시리즈 성패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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