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도 두손 든 골프 투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5일 03시 00분


재미교포 김경숙씨 체전 단체 은메달

대한골프협회 제공
대한골프협회 제공
“폐에 골프공만 한 종양이 있습니다.”

담당 의사의 진단 결과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미국 캔자스 주 오버랜드파크에 사는 재미교포 김경숙 씨(53·사진)는 2009년 11월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잔기침이 잦아져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4기 판정을 들었다. “암 세포가 이미 가슴과 목 임파샘에 퍼져 수술도 할 수 없었어요. 1년을 못 넘길 것 같다고….”

시한부 통보까지 받은 김 씨가 24일 끝난 인천 전국체육대회 골프 여자 해외부에 재미교포 대표로 출전해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개인전에서는 3라운드 합계 267타로 26명의 출전 선수 중 공동 10위. 김 씨는 “고국에 돌아와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 큰 은혜이며 기적”이라며 웃었다. 대회 전 몸에 무리가 될까봐 연습라운드를 포기한 그는 1라운드를 마친 뒤 거의 실신 상태였다.

정읍여고와 전주시청에서 핸드볼 선수로 뛴 김 씨는 1981년 미국 유학을 떠나 결혼 후 1남 1녀를 뒀다. 골프를 시작한 건 2000년. 핸디캡 7의 수준급 골퍼였던 그는 2주 간격으로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느라 골프채를 놓았다가 지난해 다시 잡았다. 8월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미주 예선을 거쳐 전국체육대회에 나서게 됐다. 그는 “아이들이 출전을 반대했지만 어쩌면 다시 못 올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의학적인 차도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더이상 전이가 안 되도록 독한 약을 5차례나 바꿔가며 병마와 싸우고 있을 뿐이다. “내 의사는 나 자신이에요. 하느님이 생명을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긍정적으로 살 겁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을까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