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야구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두산 오종학 응원단장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준PO)부터 LG와의 플레이오프(PO)를 거쳐 삼성과의 한국시리즈(KS)에 이르기까지 단 1이닝도 쉬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산이 준PO 2·3차전과 5차전에서 연장을 치렀고, 25일 KS 2차전에서도 연장 13회까지 갔으니 이닝으로 따지면 1경기를 더 치른 셈이죠. 26일에는 링거주사를 맞았답니다. 돈을 보고 이 일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못했겠죠.
인생을 돌이켜보면 어떤 운명의 이끌림이 두산 응원단석에 자신을 세운 것 같습니다. 두산의 전신 OB가 1982년 프로 원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로 오기 전, 대전을 홈으로 삼지 않았더라면? 대전에 사신 아버지가 그 시절 OB팬이 아니었더라면?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 응원단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군 제대 후 복학해 응원단이 해체 위기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또 졸업 후 2008년 마침 두산이 새 응원단장을 구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수많은 조건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지기에 앞서 필연은 오종학 씨에게 응원단상에 오르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내성적 성격이고, 노래나 춤 등 다른 예능 방면의 소질은 별로인데 응원단상에 올라가 관중을 하나 되게 움직이도록 만들면서 느끼는 그 쾌감은 한번 중독되면 끊을 수가 없더랍니다.
거의 초짜인 경력으로 인기구단 두산의 응원단장으로 일약 발탁됐을 때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죠. 원빈 닮은 ‘얼짱’ 응원단장으로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했었죠. 아주 잠깐은 우쭐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자신의 꿈은 연예인이 아니라 두산 응원단장을 오래 하는 것이라는 데 이르자, 지금은 부끄러움이 더 드는 그 시절입니다.
바깥에선 잘 모르겠지만 응원 일도 심판처럼 잘 해야 본전인 직업 같습니다. 팬들이 일편단심으로 응원단을 따라주지도 않고요. 상처도 많이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경력 6년차인데 언젠가부터 ‘준우승 전문 응원단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더군요. 두산과 프로농구 동부를 맡고 있는데, 이 팀들이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해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 프로배구 삼성화재 응원단장을 했던 이유는 바로 그 우승이란 것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느낌을 인생의 원점이자 종점으로 여기는 두산에서 누려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