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류중일의 깜짝카드 ‘5번 이승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선발 제외 예상 깨고 타순 올려… 1회 안타 치고 나간뒤 득점 성공

더그아웃으로 들어서는 얼굴 어디에도 벼랑 끝에 몰린 감독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없었다.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과 질문 사이 약간 어색할 만큼 긴 침묵이 흘렀다. 적막을 깬 건 감독이었다. 프로야구 삼성 류중일 감독은 “마지막에 몰린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만수 형(이만수 SK 감독)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아”라고 말한 뒤 허허 웃었다. 류 감독은 누가 볼까봐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류 감독은 SK와 맞붙어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최근 2년 모두 안방에서 열린 두 경기를 잡고 시작했다. 지난해는 2승 2패로 동률이 된 적은 있었지만 패배 위기에 몰린 적은 없었다. 한 경기만 내주면 패하는 상황. 승부수가 필요했다. 류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좌타 라인’이었다. 류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1번 정형식부터 5번 이승엽까지 모두 왼손 타자가 들어찬 타순표를 제출했다.

전날 류 감독이 대대적인 타순 변화를 이야기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타율 0.133으로 부진한 6번 타자 이승엽이 선발 라인업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류 감독은 오히려 이승엽을 5번 타자로 ‘승진’시켰다. 이승엽은 비록 이날 타점은 올리지 못했지만 1회 좌전 안타로 나간 뒤 득점에 성공했고, 9회에도 선두 타자로 나와 볼넷으로 걸어나가며 찬스를 만들었다.

이승엽은 6차전 9회말 동점 홈런을 터뜨렸던 2002년 한국시리즈 때도 5차전까지는 20타수 2안타(타율 0.100)로 부진했었다. 류 감독의 ‘나믿이믿(나는 믿을 거야, 이승엽 믿을 거야)’ 리더십을 등에 업은 이승엽이 2002년의 기적을 다시 대구 팬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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