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26·LA 다저스)이 깊은 정글 속 원주민들 한가운데 뚝 떨어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엔 당황할 것이다. 겁도 날 터다. 덩치 큰 이방인의 등장에 오히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달 후, 류현진을 구출하러 찾아갔을 때는 어떨까. 원주민들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껄껄 웃고 있는 류현진의 모습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처음부터 난 정글 체질이었다’는 듯….
비유를 하자면, 류현진은 이런 스타일이다. 마운드에서만 ‘괴물’이 아니다. 그라운드 밖에서의 적응력도 괴물급이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세계 최고의 무대, 그 한복판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진가를 보여준 비결이다. 9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1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워커힐시어터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메이저리그 첫 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비결을 직접 공개했다.
● 첫째, 근거 없는 논란에는 귀를 막는다
지난 1월, 첫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류현진에게 ‘아군’만 있던 건 아니었다. 현지 관계자들은 미지의 리그에서 온 덩치 큰 선수에게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달리기 능력과 몸무게는 물론, 흡연까지 도마 위에 올랐을 정도. 등판 이틀 전 불펜피칭을 하지 않는 훈련 방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전혀 신경 안 썼다”고 단언했다. “어차피 캠프 때였고 몸을 만드는 단계였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처음부터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 ‘야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던 대로만 하겠다’고 생각했다”며 “다행히 성적이 잘 나와서 논란도 묻힌 것 같다”고 말했다. 늘 그랬듯, ‘실력’이라는 가장 확실한 무기로 정면돌파한 것이다.
● 둘째, ‘내 공은 늘 좋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투수 류현진’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그 뒤를 받쳤다. 류현진은 ‘4월에 페이스가 좋다가 5~6월에 조금 부진했던 원인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자 “솔직히 내 성적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내 공은 나쁘지 않았다. 4월부터 10월까지, 전체적으로 다 괜찮았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한동안 시달렸던 ‘1회 징크스’에 대해서도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다 공이 가운데로 몰렸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초반이 더 안 좋았다”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류현진은 그저 “4일 휴식 후 5일째 등판하는 게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다”며 “무조건 맞춰야 하는 상황 아닌가. 맞추려고 노력했고, 10경기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됐다”고 했다. 가장 어려웠던 타자 역시 “헌터 펜스(샌프란시스코) 외엔 기억이 잘 안 난다. 가장 많이 상대했고, 가장 많이 맞았던 선수”라고 했을 뿐이다. 류현진은 샌프란시스코와의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바로 그 헌터 펜스를 3타수 무안타로 돌려세웠다. 극복할 수 있는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 셋째, ‘동료’의 소중함을 먼저 배운다
무엇보다 류현진은 어디서든 ‘동료’들과의 화합을 우선순위에 놓는다. 한화에서 7년을 뛰는 동안 팀 선·후배들과 두루두루 친분을 쌓았고, 야수들의 실책에도 불만 한번 표출한 적 없는 류현진이다. “선수들이 일부러 실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다들 투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걸 알고 있다. 반대로 나도 홈런을 맞을 때가 있지 않나”라고 되물을 정도다. 류현진의 통역을 맡았던 다저스 직원 마틴 김 씨도 “류현진은 처음부터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 하이톤 목소리로 인사도 하고 장난도 쳤다. 선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일까. 류현진은 오승환(삼성), 이대호(오릭스), 윤석민(KIA) 등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선배 선수들에 대해 “다들 성적은 나보다 나을 것이다. 내가 굳이 조언을 해줘야 한다면, 그냥 선수들과 빨리 친해지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고 했다. 또 일본의 ‘괴물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의 다저스 입단설에 대한 질문에도 “만약 우리 팀에 오게 된다면, 선발 순서는 별로 상관없다. 동료로서 함께 열심히 뛰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하고, 가정(팀)이 화목해야 다른 일도 다 잘 풀린다. 그 진리를 ‘괴물’은 일찌감치 깨달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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