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벅지’보다는 ‘빙속 여제’라는 말이 훨씬 듣기 좋네요. 묘하게 기분 좋은 느낌이에요.” 최근 만난 이상화(24·서울시청)가 수줍게 웃으면서 한 말이다.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꿀벅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여제(女帝)’라는 수식어가 더 자주 따라붙는다. 지난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압도적으로 여자 500m 부문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10차례의 월드컵 레이스에서 그는 9차례나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올해 1월 캐나다 캘거리 월드컵에서 세계 기록(36초80)을 경신했을 때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는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만 해도 아직 미완성 단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부분에서 흠잡을 게 없는 완성형 선수가 됐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만 해도 소치 올림픽에서 2연패는 무난하다”고 했다.
하지만 올 시즌 이상화는 한 단계 더 진화했다. 9일 열린 2013∼2014 ISU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500m 1차 레이스에서 36초91의 기록으로 여유 있게 금메달을 차지하더니 10일 2차 레이스에서는 36초74 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다시 한 번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두말할 것 없이 소치 올림픽 금메달 후보 0순위다.
○ 멈추지 않는 ‘이상화 시대’
지난달 국가대표 미디어데이에서 이상화는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2010년 밴쿠버 대회 때보다 몸과 정신 모두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밴쿠버 때와 비교해 체중이 5kg가량 줄었지만 체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졌는데 힘은 그대로 쓰니 좋은 성적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기록이 그의 말을 증명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보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던 초반 스피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들쭉날쭉하던 초반 100m 기록이 지난 시즌 10초30대 내외를 유지하더니 올 시즌에는 더욱 빨라졌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10일 2차 레이스에서의 100m 기록은 역대 공식대회 자신의 최고 스피드인 10초21까지 나왔다. 단거리 선수 출신인 케빈 오벌랜드 코치(캐나다)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원래부터 장점이었던 중반 이후 스퍼트도 여전하다. 100m에서 500m까지의 기록만 따질 때 역대 1∼4위의 기록은 모두 이상화가 가지고 있다. 이날 세계 신기록을 경신할 때의 랩타임이 26초53으로 가장 빨랐고, 올해 1월 종전 세계 기록(36초80)을 세울 때가 26초54로 2위였다. 중반 이후 힘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상화가 1000m 연습도 꾸준해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는 올해 1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1000m 한국 신기록을 세웠고, 9월 캐나다 전지훈련 중 참가한 현지 대회에서 1분13초66의 기록으로 다시 한 번 한국 기록을 경신했다.
○ “내 사전에 만족이란 없다”
누가 봐도 흠 잡을 곳이 없어 보이지만 스스로의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상화 자신이다. 이상화는 지난달 종별선수권에서 국내 대회 신기록을 세우고도 “밴쿠버 때와 비교하면 좋아졌지만 미완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상화는 틈날 때마다 “부담이 없을 수는 없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부담을 내려놓고 준비하면 좋은 성적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만의 마인드컨트롤이다. 말 그대로 부담 갖지 않고 하던 대로만 하면 소치 올림픽 주인공은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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