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7분, FC서울 몰리나의 멋진 왼발 발리슛이 그물을 가르자 벤치에 있던 최용수 감독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몰리나도 얼른 달려와 최 감독 품에 안겼다. 최근 몰리나가 처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퍽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서울이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다.
서울은 20일 전북 현대와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데얀과 몰리나의 연속 골에 힘입어 4-1 완승을 거뒀다. 서울은 승점 58이 되며 내년 챔스리그 진출권 마지노선인 4위를 굳게 지켰다. 서울과 5위 수원(승점 50)이 나란히 3경기씩 남겨 놓고 있어 역전 확률은 거의 없다. 서울은 내심 3위 전북(승점 59)도 제치겠다는 각오다.
서울이 9일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와 올 시즌 챔스리그 결승 2차전을 치른 지 2주도 채 안 지났다. 그러나 최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마치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만큼 허탈함은 컸다. 서울은 17일 인천과 홈경기에서도 후반 중반 갑자기 집중력을 잃으며 2골을 헌납하는 등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 중심에 몰리나가 있었다.
사실 몰리나는 올 시즌 페이스가 예전 같지 못했다. 특히 광저우와 결승 2차전 때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수차례 어이없는 코너킥으로 패배의 원흉이 됐다. 그러나 최 감독은 “몰리나가 지금까지 벌어준 승점이 얼마인데 그러느냐”며 개의치 않아 했다. 최 감독은 몰리나에게 어떤 위로, 조언도 안 했다. 믿는다는 뜻이었다. 몰리나도 인천전 선제골에 이어 이날 승리에 쐐기를 박는 득점으로 신뢰에 화답했다.
이날은 친형제가 상대 팀으로 맞서는 보기 드문 장면도 벌어졌다. 서울 하대성(28)과 전북 하성민(26)이 주인공. 경기 전 전북 최강희 감독은 “(성민이한테) 형에게 제대로 덤벼보라 했다”며 농담했다. 이 말을 들은 최용수 감독은 “에이 그래도 형인데”라고 웃으며 “대성이가 동생을 끔찍하게 여긴다”고 흐뭇해했다. 둘 모두 선발 출전해 전반 중반 한 번씩 볼을 뺏고 뺏기는 등 중원에서 치열하게 붙었다. 스코어에서 보듯 결과는 형의 완승. 하대성은 풀타임 뛰었고, 하성민은 후반 7분 레오나르도와 교체됐다. 승부 앞에서 양보는 없었지만 마지막은 훈훈했다. 하대성은 교체돼 나가는 하성민에게 악수를 청했고, 동생도 형의 손을 꼭 잡은 뒤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