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벌어진 사태 6개월째 흐지부지 덮으려다 뒤늦게 10월에야 진상조사 심판위원장 지시·은퇴심판 개입 밝혀 특별징계위 열었지만 결론은 또 미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창피합니다.”
“할 말은 많은데….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합시다.”
대한축구협회 행정력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 빨리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제대로 조사해 잘못은 인정하고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향후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가장 안 좋은 대처는 밖으로 알려지는 게 무서워 쉬쉬하고 감추는 것이다. 그러면 일은 더 커진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지금 축구협회 행정이 딱 그렇다.
5월 초 대전에서 심판 체력테스트가 열렸다. 400m 트랙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150m(30초)뛰기와 50m(35초)걷기를 번갈아 최소 20회 뛰어야 합격이다. 2011년까지 K리그 전임심판이었지만 이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던 A심판이 참가했다. A심판의 친한 후배 B심판도 응원 차 왔다. 문제는 A심판이 속한 그룹 테스트가 시작되기 직전 발생했다. B심판이 코스에 난입해 빨리 달리는 구간이 단축되고 천천히 달리는 구간이 늘어나도록 일부 트랙의 콘 위치를 조정했다. 이대로 테스트가 시작됐으면 A심판은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장 감독관에 의해 적발됐고, B심판은 퇴장 당했다. 이후 거리측정기를 이용해 콘 위치는 원위치 됐고 테스트는 정상 진행됐다. A심판은 결국 탈락했다.
협회가 주관한 테스트에서 명백한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 그런데도 협회의 사후조치는 어처구니없다. A심판은 이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A심판이 어떤 이유로 그런 대담한 부정행위를 저질렀는지 혹은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 여부다.
그런데 협회는 이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고 덮으려 했다. 심판들부터 쑥덕대기 시작했다. 모 국제심판은 “심판위원장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는 말이 파다하다”고 했다. 이런 데도 협회는 눈을 감았다. 알면서도 묵인했으면 방조행위고, 진짜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분위기는 더 뒤숭숭해졌다. 심판을 넘어 협회 임직원까지 술렁였다. “협회 고위층이 심판위원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퍼졌다. 스포츠동아가 이런 행태를 보도(9월27일자 8면 참조)한 뒤에야 협회는 부랴부랴 10월 초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위는 심판위원장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판위원장이 협회 이사 신분이라 현 징계위에서 다룰 수 없어 이사급 이상으로 구성된 특별징계위원회가 꾸려졌다. 특별징계위는 심판위원장과 B심판을 비롯해 5월 당시 현장에 있던 10명의 감독관을 모두 조사했다. “부정행위를 시킨 적이 없다”는 심판위원장과 “위원장이 시켜서 했다”는 B심판의 주장이 엇갈리자 대질심문까지 했다. 일부 감독관 입에서도 “심판위원장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이 확보됐다. B심판 외에 B심판과 같은 지역 출신으로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C 전 심판이 관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협회는 22일 특별징계위를 열었지만 또 다시 결론은 미뤄졌다. 협회 인사팀 관계자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왜 미뤄졌는지 더 이상은 밝힐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사건발생 후 6개월이 지났다. 협회 직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물으면 입을 닫는다. 탄식만 나온다. 특별징계위에 속한 고위 관계자는 “입은 있지만 할 말이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올 3월 취임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원칙에 입각한 일 처리였다. 그러나 협회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 회장이 아무리 ‘원칙’을 강조하면 뭐하나. 실무진이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협회의 무능 행정은 여전히 도돌이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