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나올 필요 없다” 청천벽력 2010년 결혼한 아내 생각하면 막막 그래도 현역의지 확고…내일도 훈련
선수는 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막연한 어떤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내에게 말을 해뒀다. “내가 방출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어라.”
그래도 설마 했다. 뚜렷한 근거가 없었음에도, ‘나는 아니겠지’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고 견뎠다. 롯데의 보류선수 명단이 확정된 25일, 외야수 이인구(33)는 경남 김해 상동의 2군연습장에서 훈련을 했다.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훈련 멤버에서 제외됐지만, 내년 시즌 어떤 계기를 마련해보기 위해 땀을 흘렸다.
여느 날처럼 훈련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롯데 윤동배 상동구장 소장이었다. 윤 소장은 미안함을 담은 머뭇거림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전달하려는 내용의 엄혹함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방출 통보였다. “내일(26일)부터 상동구장에 나올 필요가 없다. 그러니 상동구장에 풀어놓은 짐을 챙겨가라”는 얘기였다.
통화 직후 차를 몰고 다시 상동구장에 갔다. 짐을 다 가져왔다. 갓 퇴근한 길이니 자고 나서 26일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머뭇거리지 않고 정리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방출 통보를 듣는 순간의 감정은 분노도, 서운함도, 슬픔도 아니더라. 그냥 후련함이더라”고 이인구는 말했다.
후련함. 이제 원도, 한도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동아대 졸업 후 11년(상무 포함) 동안 롯데에서만 쌓아올렸던 무언가가 부질없이 사라져간다는 허탈함에 가까운 감정일 터다. 원점으로 돌아갔기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야구선수 이인구일 때의 얘기다.
가장 이인구는 막막하다. “2010년 아내와 결혼했다. 서울에 살던 여자가 나 하나 믿고 이곳 부산까지 왔는데…”라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이제 이인구와 그의 아내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다. 그 막막함이 지금 당장 둘에게는 힘겹다.
이제 이인구는 자유선수다. 그러나 오라는 팀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내년이면 34세인 나이가 걸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확실해도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자신의 의지다. “은퇴는 안할 것이다. 더 이상 몸이 아프지 않으니 야구를 할 것이다. 부산공고에 지인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를 원하는 팀이 나올 때까지 훈련을 하겠다”고 이인구는 말했다. 이인구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