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수장이 교체되면 조직이 변하고, 분위기가 달라지고, 문화가 바뀐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적임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3월 공식 취임한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이야기다.
전임 집행부의 잘못은 열거하기도 버겁다. 역대 집행부 중 최악이었다. 조중연 전 회장의 독단적인 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비리로 얼룩진 ‘비리협회’였다. 대표팀 사령탑을 절차도 무시한 채 경질한 건 물론이고 이후에도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축구협회 비리직원에게 위로금으로 1억4천만원을 주고 입막음을 시도한 행태는 경악 수준이었다. 협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간 것이나 감사원 감사, 체육회 감사를 받으며 수모란 수모는 다 당했다.
이런 탓에 축구인들은 변화를 원했다. 대의원들의 선택은 정 회장이었다. 하지만 취임 초기 반짝하던 호의적인 평가는 온 데 간 데 없다.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축구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최근 스포츠동아는 축구협회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한국축구에서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제안했다. 시급한 대의원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정 회장은 회장 선거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하며 축구인들의 환심을 샀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대로라면 공허한 약속이 될 게 뻔하다.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한데도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정 회장 취임 이후 가장 도마에 많이 오른 게 심판 문제다. 5월 심판 체력테스트 때 부정이 있었지만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 9월에는 현역심판이 파주NFC에서 교육 도중 밤에 몰래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 고성방가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이런 데도 심판 개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정 회장이 누누이 강조해온 원칙 있는 행정은 그야말로 말뿐이다.
여자축구를 홀대하는 시각도 문제가 많다. 남자축구에 대한 많은 지원은 당연하지만 여자축구를 소외시켜선 안 된다. 이 점도 축구협회는 분명히 알아야한다.
축구협회가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스포츠동아가 최초 보도했다. 올 5월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지 6개월 밖에 안 된 시점이라 다시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건 분명히 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 많은 축구인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 과연 전 집행부의 일인지 아니면 현 집행부의 일인지 알고 싶어 한다.
중요한 건 국세청이 축구협회의 범칙행위를 인지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정 회장 체제의 범칙행위가 드러난다면 치명타를 입는다. 국세청은 이번에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썩은 데가 있으면 도려내야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한다. 비리협회, 추태협회, 복마전의 오명은 더 이상 곤란하다.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미래와 혁신’을 얘기했다. “미래는 축구문화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모으고, TV 앞에 모인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며, 기업들이 축구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찾게 할 것이다.”
맞는 말이고, 좋은 얘기다. 하지만 그 이전에 협회 행정부터 개선해나가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 밑바탕이 부실한데 미래까지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 회장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집안 단속부터 먼저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