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달라” “못 준다”로 평행선을 걷던 연봉 협상은 전지훈련 출발 즈음에 절정에 다다르곤 한다. “미계약자는 안 데려간다.” “그럼 난 안 간다.” 가끔은 협상이 전지훈련지로 장소를 옮겨 벌어지기도 한다. 이쯤 되면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팀워크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스타 선수일수록 연봉 협상과 관련된 잡음이 크기 마련이다. 30여 년간 대부분의 국내 프로야구 구단에서 의례적으로 반복되던 일들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에 반기를 든 구단이 있다. 넥센이다. 최근 넥센의 연봉 협상을 지켜본 다른 구단의 연봉 협상 담당자들 입에서는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2008년 창단한 넥센은 올해 창단 후 처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넥센의 질주는 정규시즌이 끝난 스토브리그에도 계속되고 있다.
○ 넥센이 주도하는 야구계(?)
지난 시즌부터 넥센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연봉 협상 방식을 택했다. 기존 구단과는 정반대로 최고 스타부터 협상을 마무리 짓고 보통 선수, 신예 선수로 협상을 이어가는 것. 지난 시즌 한국 프로야구 연봉 계약 1호는 지난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박병호였다. 6200만 원이던 연봉이 254.8% 인상된 2억2000만 원으로 뛰었다.
올해 팀 연봉 계약 1호는 프랜차이즈 스타 강정호였다. 올해 3억 원에서 내년 4억2000만 원으로 1억2000만 원이 올랐다. 3루수 김민성과 손승락도 기대 이상의 연봉을 받았고 ‘빅4’의 마지막이었던 박병호는 5억 원을 제시받고 단번에 도장을 찍었다. 박병호는 “내심 4억 원 정도를 기대했는데 5억 원을 주신다고 하기에 나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평범한 성적을 낸 다른 선수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넥센은 이들에게는 연봉 고과에 따른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협상을 통해 몇천만 원은커녕 몇백만 원도 올리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넥센 내부 분위기는 다르다. 넥센 관계자는 “잘하면 기대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눈앞에 그 본보기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넥센의 한 선수도 “300만 원 차이로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내년에 잘한 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 ‘빌리 장석’의 실험은 어디까지
넥센은 다른 구단들로부터 올해 자유계약선수(FA) 몸값 폭등의 원인 제공자로도 지목받고 있다. 2011년 말 LG에서 FA 자격을 얻은 이택근을 4년간 총액 50억 원에 데려온 게 몸값 인플레의 시작이었다는 것. 실제로 50억 원은 이듬해 김주찬(KIA)을 시작으로 수준급 선수들의 몸값 기준이 됐다.
넥센의 파격적인 실험은 이장석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명단장 빌리 빈의 이름을 따 ‘빌리 장석’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이 대표는 기존 프로야구 판에서 보기 힘들었던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넥센이 야구 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기업의 눈치를 보고 돈을 타 와야 하는 다른 구단과 달리 넥센은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이 장점이다. 현재까지 넥센의 실험은 성적과 마케팅 모두에서 성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몇 해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넥센의 모습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넥센이 또 어떤 일을 터뜨릴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형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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