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 수비수 김원일(27)이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다. 4일 팀 동료들과 회포를 풀며 일찌감치 송년회를 마쳤다. 고향인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부모님 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부모님이 직접 공수한 장어를 먹으며 새달 5일 소집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은 김원일에게 더 이상 달콤할 수 없는 시즌이었다. 중앙수비수로 34경기를 뛰며 정규리그와 FA컵 정상에 섰다. 울산 현대와 시즌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적 결승골을 터뜨리며 우승의 감격을 맛 봤다. 1996년 FA컵 창설 이후 역대 첫 더블(2관왕). FA컵 사상 첫 2연패는 덤이었다. 3일 K리그 시상식에서 꿈도 꾸지 않았던 생애 첫 시즌 베스트11 수비 부문에 꼽혔다.
12일 만난 김원일은 “2012년도에 1차례 주간 베스트11에 꼽혔어요. 올 시즌을 앞두고 딱 3번만 뽑히자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을 몰랐죠”라고 웃었다. 성실함 하나로 버틴 축구인생이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다.
김원일은 2010드래프트 6순위로 포항 유니폼을 입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경남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도 “경남에서 1순위로 뽑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포항 유니폼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포항에 가면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쟁쟁한 선수들이 워낙에 많아 경쟁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거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도시민 구단에 가기를 바랐어요.”
그해 드래프트에는 경쟁력 있는 중앙수비가 대거 몰렸다. 전체 1순위 1번을 차지한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가 대표적인 주인공. 1순위 2번을 뽑은 경남은 이경렬(부산)을 지명했다. 김원일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마지막 6순위까지 간 끝에 포항으로부터 호명을 받았다. 그는 “인터넷으로 보고 있었는데 조금 실망했죠. 근데 같이 지켜봤던 후배가 뽑히지 않는 걸 보고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김원일의 장점은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다. 포항 입단 후 선배 김형일을 롤 모델로 삼았다. 포항에서 해병대 근무할 때부터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에 넋이 나갔다. 자신에게 부족한 모습이었다. 작년부터 중앙수비로 호흡을 맞춰온 김광석에게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있다. 김원일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광석이형이 수비 리딩부터 많은 부분을 지적해주고 조언해줍니다. 지금은 형의 기복 없는 플레이를 가장 본받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기 보단 동료들의 조언을 적극 귀담아 듣는 편이다.
황홀했던 올 시즌을 쉬이 잊긴 힘들다. 다만 영광과 환희의 순간을 한켠으로 옮기려고 한다. 그도 알고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안주하지 않고 항상 전진하려고 애쓴다. 그는 “정점을 찍으면 내려갈 곳밖에 없잖아요. 제가 벌써 그런 단계는 아니잖아요. 더욱 노력해야죠”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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