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이근호 “월드컵 한 골이면…비운의 황태자 수식어 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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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7시 00분


상주상무 이근호는 올 시즌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그의 다음 꿈은 남아공 때 못 이뤘던 월드컵 출전이다. 스포츠동아DB
상주상무 이근호는 올 시즌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그의 다음 꿈은 남아공 때 못 이뤘던 월드컵 출전이다. 스포츠동아DB
■ 상무에서 진화한 이근호

안주했던 나…상무서 타종목 선수 보고 자극
입대 후 목표 뚜렷…조급함 대신 여유 생겼다
월드컵 갈망 여전…내년 3월 A매치만 볼 것


“시련을 통해 성장했고, 당당해졌다.”

2014브라질월드컵 각오를 묻는 말에 이근호(28·상주상무)는 담담했다. 그는 한국 대표 공격수로 꼽히지만 부침이 많았다.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펄펄 날며 당시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정작 본선은 밟지 못했다. 2009년 유럽 진출 실패의 후유증은 경기력으로 이어졌고, 대표팀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생애 첫 월드컵 도전이라는 과제 앞에 섰다. 그래도 3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신분도 대한민국 육군 상병이다. ‘상복(賞福)’도 한꺼번에 터졌다. 2012년 울산 현대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함께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고, 올해는 상주를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정상과 클래식(1부 리그) 승격으로 이끌었다. 챌린지 원년 득점왕(15골)과 MVP 모두 그의 몫. 상주 박항서 감독도 “이근호가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맹활약해 상주상무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려주기를 희망한다”며 애제자의 건투를 기원했다. 스포츠동아는 국군체육부대에서 복무 중인 이근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 상무에서 새로운 날 찾다

- 브라질월드컵에 가기 위해 클래식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챌린지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다만, 현실에 순응하고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게 싫었다. 나도 모르게 ‘이쯤이면 됐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적당히 하며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거칠고 치열한 경쟁이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봤다.”

- 언제부터 안주한다는 생각을 했나.

“대표팀에 다녀올 때마다 부족함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경기력이 안 좋으면 ‘챌린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나름 많은 성과를 이룬 올해는 잘 보냈다고 자부한다.”

- 군 입대 후 많이 성숙해졌다던데.

“여기서 자극을 많이 받고 있다. 타 종목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내 자신이 부끄럽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저렇게 할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모든 걸 절제하고 참고, 마음을 가다듬고 인내하고…. 기술보다는 정신적으로 달라졌다.”

- 군인이라 좋은 점은 뭔지.

“처음 입대했을 때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란 생각을 종종 했는데,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 부족함이 뭔지, 모자란 게 뭔지 하나씩 채워나간다. 규칙적인 생활패턴도 큰 도움이다.”

시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다보면 신분이 헷갈릴 때가 있다. 이 때 자신이 군인임을 실감케 해주는 게 있다. 사격이다. 시즌 중에도 사격 훈련은 자주 한다. 이근호의 실력은? “정신무장을 단단히 해도 총은 나와 인연이 없다. 처음에는 실거리 사격 4발조차 어려웠다.” 참고로 합격선은 12발이다. 사격이란 말에 잠시 말꼬리를 흐린 그는 월드컵을 화두에 올리자 목소리부터 밝아졌다.

● 2010년, 그리고 지금의 이근호

- 3년 전과 가장 다른 점은?

“목표와 조급함의 차이다. 그 때는 뚜렷한 목표 없이 조급했고, 이젠 목표가 있고 조급하지 않다. 유럽 진출 실패로 방황하다보니 몸이 잘 안 따라줬다. 이는 경기장에서 나타났다. 준비도 없이 마음만 조급했는데 지금은 반대다.”

- 일련의 실패가 인생에 뭘 가져다줬나.

“여유가 생겼다. 군 입대를 택한 건 2014년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생각이 없다. 순간의 과정, 어떤 결과에도 얽매이지 않고, 착실히 한 계단씩 오르겠다.”

- 그래도 2014년은 더 특별할 것 같다.

“부담도 덜하고, 조급하지 않아도 월드컵에 대한 갈망은 있다. 그냥 바로 앞만 본다. 반 년 후가 아닌, 당장 내년 1월 소집과 3월 A매치를 바라볼 뿐이다. 남아공월드컵은 당연히 갈 줄 알았고 오만했다. 돌이켜보면 탈락은 당연했다.”

- 그간 시련은 어떤 의미인지.

“인생관을 바꿔줬다. 단단해졌다. 선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강해졌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도 모든 역경을 이길 힘을 줬다. 틀림없다.”

- 내년에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을 떼어낼 수 있을까.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월드컵 한 골이면 드라마를 완성한다고.”

남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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