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 올여름 지구촌을 화끈하게 달굴 월드컵은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이후 36년 만에 남미 대륙에서 열린다. 축구에 열광하고 삶 자체가 축구인 남미 국가들. ‘춤추는 축구’(2011년)의 저자들이 남미축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대해부한다. 저자들은 남미에서 1∼3년간 공부하며 축구에 푹 빠진 마니아들이다. 》
각 민족은 자기 문화의 상징을 민족 정체성으로 삼는다.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열대의 나라 브라질은 전 세계로 잘 알려진 여러 가지 문화 아이콘을 가지고 있다. 삼바, 카니발, 보사노바를 위시한 브라질 대중음악과 모두에게 잘 알려진 ‘축구의 나라’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유엔은 2013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56개 국가 중 한국이 41위, 브라질은 24위라고 밝혔다. 행복은 성적이나 소득 순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19세기 영국으로부터 브라질에 들어온 축구는 단순히 국민행복지수를 올려주는 차원을 넘어 브라질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브라질 아이들은 축구를 생활 속에서 즐긴다. 브라질에서 생활하다 보면 굳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월드컵 5회 우승국이라는 전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축구의 나라’임을 느낄 수 있다. 브라질 유학 시절 아파트 내 미니 축구장에서 맨발로 빨랫줄 같은 슛을 쏘는 여자 아이를 보고 질겁한 적도 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저마다 집을 비워 두고 각자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있는 스타디움에 삼삼오오 모여든다. 그리고 90분 동안 골치 아픈 일상은 저리 치워버리고 거의 종교적 신앙 차원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운명을 같이한다.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는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가지 경향을 그리스 신화를 빌려 설명했다. 형식과 조화를 중시하는 이성 위주의 ‘아폴론’적인 것과 개인의 원초적인 감정과 의지를 강조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 이런 관점에서 인간이 만든 하나의 문화예술 행위인 축구를 바라볼 때 승패를 떠난 선수들의 선전(善戰)은 아폴론적 시각에서 영웅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아마추어들은 축구를 할 때 ‘사람’이 아닌 ‘공’을 보라는 지적을 많이 듣는다. 그렇다. 축구에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고 ‘공’이다. 누가 넣든 간에 공이 상대편 골네트를 갈라야 경기의 승패가 좌우된다. 그 다음에 그 공을 다룬 사람이 드러난다. 브라질은 그 공을 골대로 이끄는 방식에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 신체를 사용하는 방식도 각 사회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고 했듯 브라질 사람들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선수들이 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다리의 움직임이 상체의 움직임과 유리(遊離)돼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반면 브라질을 비롯한 이탈리아와 멕시코, 칠레, 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공을 다룰 때 몸 전체를 이용할 줄 안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후자에 속한 선수들이 개인기가 좋다는 얘기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몸 전체 움직임이 조화로운 종합 예술은 브라질 특유의 ‘조구 지 신투라(jogo de cintura)’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조구 지 신투라’는 하나의 브라질식 융통성이다. 이는 브라질 국민들 생활 속에 내재된 문화코드로 작동한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에 투자하고자 하는 외국 기업들이 브라질에서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은 바로 바람이 꽉 찬 ‘축구공처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사업 환경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존재하고 예측 못할 변수가 혼재된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폴론’적인 시스템에 의지하기보다는 ‘개인기’가 뛰어난 경영진을 확보하는 것이 기업 생존의 관건이었다.
축구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해에 1000명의 축구 선수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사실이 브라질 출신 선수가 지닌 뛰어난 상황 적응력과 창의적인 경기력을 대변해 준다. ‘조구’는 ‘경기’라는 의미이며 ‘신투라’는 ‘허리’를 의미한다. 매번 불확실한 공이 만들어내는 새롭고 다양한 상황에서 온갖 장애물을 넘어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허리춤을 쓰는’ 비법은 브라질 축구가 다리만 쓰는 축구가 아닌 온몸을 쓰는 축구라는 걸 증명한다. 굳이 시각적으로 비유하자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허리를 비틀면서 총알을 피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고나 할까. 유럽리그는 시원스럽게 뻗는 공을 보는 재미가 있지만 브라질 국내리그는 골문 앞 혼전 속에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불확실한 공으로 상대를 제치고 넣는 골을 보는 재미가 최고다.
브라질 사람들은 문전 앞 혼전처럼 일상의 삶에서 자신에게 직면한 불확실성을 구제하는 방식을 축구를 통해 해소한다. 다리만이 아닌 몸 전체의 종합예술이 최절정에 이르면서 없던 공간까지 창출해서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골은 바로 그들의 자긍심인 ‘브라질 축구’이며 관중을 열광하게 만든다. 공은 둥글고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브라질에서는 유명한 선수들도 중요한 경기에 임할 때 액운을 막기 위해 스타킹에 마늘 한 쪽을 넣는다. 세계 최고의 개인기로 경기장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브라질 선수들은 여전히 ‘디오니소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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