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는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활동 때문에 남미의 스위스로 불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월드컵의 나라’로 더 유명하다. 1930년 제1회 월드컵은 남미의 작은 국가 우루과이에서 개최됐다. 우루과이는 강호들을 무너뜨리고 첫 월드컵을 거머쥐었다. 또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에서 역전 우승하면서 브라질에 뼈아픈 트라우마를 남겼다. 초기 월드컵은 ‘차루아(Charr´ua) 전사들’이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루과이 역사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스페인 사람이 이곳에 도착한 뒤 정착해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우루과이에는 약 4000년 전부터 차루아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식민 과정에 쓰러져 갔다. 1831년 4월 11일에는 베르나베 리베이라가 차루아 원주민들을 초대해 놓고 살시페데스에서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이후 차루아 원주민들은 우루과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불굴의 저항정신을 기리며 차루아 전사들이 되살아났다. 우루과이 사람들은 축구 대표팀을 ‘차루아 전사들’이라고 부른다. 외세에 맞서 싸웠던 선조들의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다.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축구경기장에서 선수들은 외세와 맞서 싸웠던 조상들의 정신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많은 차루아 전사가 국가를 위해 뛰었다.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일명 페페)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마지막 경기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동점골을 뽑아낸 우루과이의 축구 영웅이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엔소 프란세스콜리는 프랑스의 영웅 지네딘 지단이 우상으로 꼽아 더 유명하다. 그는 남미컵을 세 차례나 들어올렸다. 알바로 레코바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왼발의 지단으로 불렸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에 아픔을 안기며 팀을 4강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디에고 포를란은 금세기 최고의 차루아 전사였다. 신성 루이스 수아레스는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야생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에서 뛰고 있는 그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가장 기대되는 선수이다. 플레이오프에서 요르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리그에서도 신의 경지에 들었다고 할 정도로 기량이 급성장하고 있다. 차루아 전사들은 남미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다.
우루과이 인구는 부산시(약 353만 명)보다도 적다. 이런 작은 나라가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훌륭한 선수를 끊임없이 배출할 수 있는 것은 우루과이 국민에게 축구가 삶이고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루과이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축구공이다. 어린이들은 7명으로 구성되는 ‘유소년축구’에 참가해 함께 축구를 즐기면서 자란다. 또 청소년기에는 축구클럽에서 친구, 코치, 프런트 직원들과 사랑과 애정을 나누며, 성장에 필요한 음식도 제공받는다. 축구는 단순히 놀이문화가 아니라 교육이며 돌봄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우루과이에서 축구는 곧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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