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동계올림픽]20kg 돌 끌어안고 사는 다섯 여자, 빙판의 우생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사상 처음 올림픽 나가는 여자컬링 대표팀

2012년 초만 해도 서울 태릉선수촌에는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잠은 선수촌 부근 모텔에서 잤다. 훈련 도중 점심은 분식점 배달 음식으로 때웠다. 그것도 라커룸 테이블 위에 신문지를 깔고 먹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선수들은 틈만 나면 웃음꽃을 피웠다. 팀 동료라기보다 가족 같았다.

불과 2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2012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컬링선수권대회에서 기적 같은 4강 진출을 이뤄낸 기쁨도 잠시. 곧이어 국내에서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깊은 실의에 빠졌다. 다시 일어선 그들은 하루 9시간의 강훈련을 이겨냈고 지난해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우승해 다시 국가대표가 됐다.

신미성(36) 김지선(27) 이슬비(26) 김은지(24) 엄민지(23·이상 경기도청)로 구성된 여자 컬링 선수단에 소치 올림픽은 특별하다. 1994년 한국에 컬링이 도입된 지 20년 만에 올림픽 출전이라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나가게 된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올림픽 출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 ‘외인구단’ 올림픽에 나가다

보통 사람들이 컬링에 대해 가지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바로 빗자루질이다. 대체 이게 뭐가 재미있을까 싶지만 막상 해보면 다르다. 정교한 힘 조절로 스톤을 던져 하우스라는 반지름 1.83m의 표적 안에 많이 집어넣는 게 기본이다. 번갈아 스톤을 던지면서 상대 팀의 스톤을 쳐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바둑과 같은 치열한 머리싸움이 필요하다.

역사가 길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대표 선수들도 우연찮게 컬링을 접했다. 한국 여자 컬링 1세대인 신미성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컬링 중계를 보다가 신선한 스포츠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다니던 대학에 컬링 동아리가 있어 가입했는데 이후 15년 넘게 그 매력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스케이트 선수였던 김은지는 부상을 당해 재활을 하다가 컬링으로 전향했다. 김지선은 대학 재학 중 중국에 유학을 갔다가 현재 남편이자 중국 남자 컬링 국가대표인 쉬야오민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컬링 선수가 됐다. 고교 시절 컬링부가 해체돼 2년 가까이 쉬었던 이슬비는 정영섭 감독의 권유로 다시 컬링으로 돌아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컬링을 하던 막내 엄민지는 뛰어난 실력으로 막판에 대표팀에 합류했다.

○ 빙판의 ‘우생순’을 꿈꾸며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 컬링 대표팀은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다른 9개 국가에 비해 열세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세계랭킹은 10위. 소치 올림픽 출전국 중 최하위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슬비는 “우리끼리는 항상 ‘금메달은 우리 거야’라고 말한다. 2년 전 세계선수권 때도 한국의 세계랭킹은 12위로 참가국 중 최하위였지만 4강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4강까지만 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주장인 스킵을 맡고 있는 김지선도 “선수라면 누구나 욕심이 있다. 전년도 우승팀이 단숨에 하위권으로 처질 수 있는 게 컬링이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단의 강점은 힘든 시절을 함께하면서 쌓아온 팀워크다. 지난해 합류한 엄민지를 제외한 4명은 2009년부터 한팀을 이뤄왔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최민석 컬링 대표팀 코치는 “이들은 5년 가까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 왔다.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 더 친하다. 팀워크가 성적과 직결되는 종목이니만큼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자신감도 커졌다. 세계랭킹 1, 2위인 스웨덴과 캐나다가 출전한 지난해 9월 중국오픈에서 한국은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태평양아시아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최 코치는 “예선 첫 경기의 상대가 일본이다. 일본전을 이기면 순항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소치 경기장과 비슷한 빙질을 가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전지훈련 중인 컬링 대표팀은 6일 소치에 입성한다. 빙판의 ‘우생순’ 신화가 개봉박두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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