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지난해 캐나다 런던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때 쓴 ‘레미제라블’ 음악의 마지막 노래 제목이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는 20개월을 쉬고도 카롤리나 코스트너(197.89점·이탈리아)를 20점 차 이상으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맞다.
내일은 온다. 김연아가 스스로 내일을 만드는 사람인 까닭이다.
김연아는 2000년대 여자 피겨에서 가장 독보적인 선수다. 김연아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기록한 78.50점과 프리스케이팅 점수 150.06, 합계 점수 228.56점은 여전히 세계 기록이다.
김연아는 2002년 새로운 채점제도를 도입한 뒤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했고, 세계 기록도 11차례나 새로 썼다. 올림픽 2연패는 피겨 전설이 되기 위한 화룡점정이다.
이전까지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2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단 두 명뿐이다. 소냐 헤니(노르웨이)가 1928년 생모리츠 대회 때부터 3연패했고, 이후 카타리나 비트가 1984년 사라예보 대회와 1988년 캘거리 대회를 연속 제패했다.
김연아는 이 명단에 세 번째로 자기 이름을 올리려 한다. 》
올림픽 직전 해에 열린 세계선수권의 우승자 중 77%가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김연아에게 고무적인 징조다. ‘숙명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24)의 설욕을 누구보다 기대할 일본 언론조차 “김연아의 우승 확률이 85∼90%”라고 점쳤다. 그만큼 기량 차이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겨울 스포츠 현장을 누빈 미국 기자는 “골프처럼 여자 피겨도 1부와 2부를 나눠야 한다. 1부는 김연아 경기용, 2부는 나머지 선수 경기용”이라고 극찬했다. 큰 실수만 없다면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는 떼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 소치 올림픽 때 샛별이 떠올랐다. 러시아 대표 율리야 리프니츠카야(16)가 이번 대회부터 시작된 피겨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적수로 급부상한 것이다. 리프니츠카야는 지난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유럽선수권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209.72점으로 우승했다. 209.72점은 ISU 공인 대회 성적 중 역대 4번째로 높은 점수다. 1∼3위는 모두 김연아가 기록한 점수다.
최근 ‘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하다는 점도 김연아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밴쿠버 대회 전까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점수 200점 이상을 기록해 본 선수는 김연아와 아사다 둘뿐이었다. 밴쿠버 대회 때는 200점은 메달 안정권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200점을 넘겨도 메달을 딸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리프니츠카야에 이어 유럽선수권 2위를 차지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러시아)도 이 대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200점대(202.36점)를 경험했다. 리프니츠카야와 소트니코바는 홈어드밴티지를 안고 뛰기 때문에 김연아보다 연기가 떨어져도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을 소지가 크다.
지난해 캐나다 세계선수권 때 6위를 차지했던 그레시시 골드(19·미국)는 “같은 식당에서 김연아를 봤지만 감히 내 우상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던 선수다. 그러나 지난달 12일 미국선수권에서 합계 211.69점으로 우승하며 200점대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김연아의 우상 미셸 콴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김연아와 비교해도 괜찮을 정도”라고 골드를 치켜세웠다. 미국은 밴쿠버 대회 때 12회 연속 메달 행진 제동이 걸리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골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영원한 라이벌 아사다 역시 단체전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번 시즌에만 200점대 이상을 세 차례 기록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김연아의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본 우리가 훗날 자손들에게 동화처럼 김연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김연아와 같은 시대를 산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말하는 팬들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연아의 ‘마지막 내일’은 20일(쇼트프로그램), 21일(프리스케이팅) 0시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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