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저 잘한거죠?”… 승희, 아쉬움 털고 웃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4일 03시 00분


희망 되찾은 한국 쇼트트랙

불운에 울었지만… 다시 환한 웃음 박승희(22·화성시청)가 13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선에서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에 밀려 넘어지며 꼴찌로 경기를 마친 뒤 울먹이고 있다. 그러나 박승희는 동메달로 판정 받고 곧이어 열린 플라워 세리머니 때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팬들의 환호에 답했다.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불운에 울었지만… 다시 환한 웃음 박승희(22·화성시청)가 13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선에서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에 밀려 넘어지며 꼴찌로 경기를 마친 뒤 울먹이고 있다. 그러나 박승희는 동메달로 판정 받고 곧이어 열린 플라워 세리머니 때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팬들의 환호에 답했다.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쇼트트랙 단거리 종목인 500m는 순발력 싸움이다. 안쪽 1번 레인을 받는 선수가 가장 유리하다. 초반 스타트에서 앞서 나간다면 우승 가능성은 높아진다.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선이 열린 13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준준결선과 준결선을 1등으로 통과한 박승희(22·화성시청)는 1번 레인을 배정받았고, 초반 스타트에서도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한국 쇼트트랙의 새 역사가 만들어지는 듯했다. 그동안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나온 한국의 유일한 메달은 전이경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위원이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딴 동메달이었다.

○ 금메달은 신의 영역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신이 내린다고 했던가. 승리의 여신은 결정적인 순간에 고개를 돌렸다. 두 번째 코너를 돌면서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던 엘리스 크리스티(영국)가 넘어지면서 그 여파로 박승희마저 미끄러져 안전 펜스에 부딪치고 말았다. 3위로 달리던 아리안나 폰타나(이탈리아)도 함께 넘어졌다. 그래도 박승희는 넘어진 선수 중 가장 앞서 있었기 때문에 빨리 달려 나간다면 은메달까지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박승희는 한 번 더 넘어졌고 4명의 결선 진출 선수 가운데 가장 늦은 54초207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크리스티가 실격 판정을 받으면서 4위로 골인한 박승희는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다 잡았던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다.

최광복 여자 대표팀 코치는 “이게 바로 쇼트트랙이다. 의외의 변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한국이 약했던 여자 500m에서 자력으로 결선에 진출해 동메달까지 따냈다. 감사히 받아야 한다. 승희가 두 번이나 넘어졌지만 빨리 털고 일어나 나머지 레이스를 잘 마쳤다”고 말했다.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친 박승희로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 이 경우엔 왜 재경기를 하지 않았을까.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정한 쇼트트랙 규정에 따르면 스타트 후 25m 정도의 거리에 있는 4번째 검은색 블록(아펙스 블록)에 도달하기 전 상대 선수에 의해 넘어졌다면 무조건 재출발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날의 충돌 상황은 거의 한 바퀴를 다 돌기 전에 벌어져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규정에는 또 레이스 중 1∼3위 선수가 한꺼번에 넘어질 경우 레퍼리(심판) 재량에 따라 재출발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재출발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빙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낙담보다는 희망을

빙판에서는 아쉬움에 펑펑 눈물을 쏟던 박승희는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으로 들어왔을 때는 한결 안정된 모습이었다. 그는 믹스트 존에 들어서서도 눈물을 쏟았다. 가족 생각을 하면서 흘린 눈물이었다.

박승희는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동메달도 제게는 값지다. 4년 전 밴쿠버 대회 계주에서 1위로 들어오고도 실격당했을 때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기쁨이 더 크다. 이 종목에서 메달을 딸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 종목에서 16년 만에 나온 메달이라고 말하자 그는 놀란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정말요? 그러면 저 잘한 거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또 “순발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후배들에게 단거리에도 메달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줘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승희는 두 번째 넘어지는 과정에서 오른 무릎을 다쳐 15일 출전 예정이던 1500m에는 불참하기로 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강세 종목인 1000m와 1500m, 3000m 계주를 남겨 두고 있어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

한편 이한빈(26·성남시청)-박세영(21·단국대)-신다운(21·서울시청)-이호석(28·고양시청)이 이어 달린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날 5000m 계주 준결선에서 이호석이 4바퀴를 남기고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따낸 한국 남자 계주팀이 결선 진출에 실패한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준결선에서 실격한 이후 12년 만이다. 반면 안현수(빅토르 안)가 이끈 러시아는 조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승희#쇼트트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