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로 출전해 미국 격파 3승째
모텔서 자며 훈련 등 감동 스토리… 4강 실패했지만 국민 관심 치솟아
“아빠 컬링 어디 가면 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TV 화면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16일 열린 한국과 덴마크의 소치 겨울올림픽 컬링 여자 경기를 보고 있었다. 태극마크를 단 언니들이 빙판 위에서 뭐라 소리를 지르며 돌을 굴려 맞히고 빗자루 같은 걸로 연방 얼음바닥을 쓰는 모습이 퍽 흥미로운 듯했다. 경기 규칙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경기 TV 시청률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수준인 13.6%를 기록했다.
올림픽 출전을 계기로 국내에 컬링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비록 한국 컬링은 3승 5패를 기록해 남은 캐나다와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목표로 삼은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컬링이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게 큰 수확이었다. 대한컬링경기연맹 사무국에는 컬링 입문 절차, 도구 구입 등을 묻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대회 기간 컬링 생중계 시청률은 평균 10% 내외를 유지했다.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빙판의 우생순’으로 표현되며 진한 감동을 전했다. 주장 김지선(27)은 팀이 없어 떠돌아 다녀야 했다. 이슬비(26)는 생계를 위해 유치원 보조교사로 일했다. 신미성(36) 김은지(24) 엄민지(23)도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뜨거운 가슴에 간직하며 냉기와 싸웠다. 한때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수 없어 모텔에서 잠을 자며 분식집 배달 음식으로 허기를 때우면서도 올림픽을 향해 한마음으로 뭉쳤던 그들이었다.
20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 컬링의 세계 랭킹은 올림픽 출전 10개국 중 가장 낮은 10위. 하지만 한국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꺾으며 올림픽 첫 승을 거뒀고 개최국 러시아도 눌렀다. 17일에는 세계 7위 미국을 11-2로 완파했다. 김지선은 “컬링 역사가 막 시작됐을 뿐이다. 앞으로 많이 응원해주면 더욱 최선을 다해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했어도 한국 컬링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국내에 컬링 전용 연습장은 태릉과 의성 등 두 군데뿐이다. 등록 선수는 600명 정도로, 전용 시설만 11개에 이르는 일본(50만 명)과 비교가 안 된다. 정영섭 대표팀 감독은 “국내 얼음판은 돌이 곧게 뻗기만 한다. 컬링이라는 이름대로 다양하게 휘는 구질의 돌을 구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경기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로 대기업의 지원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저변 확대를 위한 실업팀 창단도 시급하다. 한국 컬링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뗐을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