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열 살에 만난 소년-소녀, 스물일곱에 별을 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17년 호흡 맞춘 화이트-데이비스… 美 아이스댄싱 사상 최초 금메달

10세 소녀는 부끄럼이 많아 처음 만난 동갑내기 소년과 눈도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1997년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인근의 한 아이스링크에서였다. 그들에게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던 코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소년의 이마에 웃는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를 붙이게 한 뒤 소녀에게 쳐다보도록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인연이 17년이 흘러 올림픽 금메달로 연결될 줄 누가 알았을까.

27세 동갑내기인 메릴 데이비스와 찰리 화이트(미국). 어릴 때부터 줄곧 호흡을 맞춘 이들은 18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싱에서 합계 195.52점을 받아 미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이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데이비스와 화이트는 대회 2연패를 노리던 라이벌 테사 버튜-스콧 모이어(190.99점·캐나다)를 제쳤다. 화이트는 “17년 동안의 고된 과정을 이제 보상받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데이비스는 “우리 둘은 많이 다르다. 서로의 차이를 맞추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처음에 어색하기만 했던 이들은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의 감정을 꿰뚫을 정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Scheherazade)’에 맞춘 이날 연기는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나란히 미시간대에 진학해 데이비스는 인류학을, 화이트는 정치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4대륙 대회,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에 이어 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르며 최고의 호흡을 과시했다.

한편 스포츠 최강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피겨 아이스댄싱에서 첫 금메달을 신고하면서 역대 올림픽 노골드 종목이 12개로 줄었다. 미국은 아직 겨울올림픽에서 루지, 컬링, 피겨 페어,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스키점프에서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여름올림픽에서는 근대5종, 리듬체조, 필드하키, 배드민턴, 탁구, 핸드볼이 미국의 금메달 불모지로 남아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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