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강심장’은 없습니다, 연습벌레만 있을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1일 03시 00분


쇼트 연기 현장에서 본 김연아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김연아(24)의 미소를 기억하시나요.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24·일본)의 바로 뒤 순서였습니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73.78이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기쁨에 겨워 방방 뛰는 아사다를 향해 김연아는 씨익∼미소를 지었지요. 당당하게 빙판으로 나간 김연아는 78.50점의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김연아는 ‘강심장’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김연아를 ‘천하의 강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9일(현지 시간)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온 김연아의 눈 아래는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로 감추려 해도 긴장과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김연아는 “오늘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경기 직전 워밍업(몸 풀기) 시간에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연습 때 편하게 뛴 점프가 하나도 없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실전에 들어갈 때까지 갖가지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종합선수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오전에 링크에서 연습을 하는 김연아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김연아는 당황했고, 관계자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 들어가자 김연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왕의 위엄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면 극도의 긴장 속에서 김연아는 어떻게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을까요. “연습 때는 늘 쇼트프로그램에서 클린(무결점 연기)을 했다. ‘연습에서 잘했는데 실전에서 못할 건 또 뭐냐, 몸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여기서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는 말에 답이 있습니다. 연기를 했다기보다는 몸이 먼저 알아서 반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타격이나 투구는 재능을 타고나야 합니다. 이에 비해 수비는 꾸준한 연습으로 어느 정도는 수준급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한한 반복 연습이 이뤄져야 하지요. 언제 어떤 상황이건 김연아가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한 노력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이날 김연아는 두 번 미소를 지었습니다. 프로그램 후반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을 뛰고 난 뒤 미소를 한 번 지었고, 프로그램을 끝낸 뒤 안도 섞인 미소를 또 한 번 지었습니다. 자신의 걱정과는 달리 저절로 움직여 준 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몸을 만든 건 김연아 자신이었습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김연아#쇼트프로그램#피겨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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