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한국 시간)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이곳에서 경기를 끝까지 지켜본 미국 IB타임스의 피겨 전문기자 로버트 일리치의 입에서는 3번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짧았지만 이날 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놀람과 짜증의 본능적 표현이었다.
일리치 기자는 전날 쇼트프로그램에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엉덩방아를 찧는 등 실수를 연발한 율리야 리프니츠카야(러시아)의 점수가 200점을 넘기자 “노 웨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김연아가 연기를 마치자 엄지를 치켜세웠던 그는 잠시 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오 마이 갓”이라고 내뱉었다. 전광판에 뜬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점수가 144.19점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가 김연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자 들썩대며 좋아하는 러시아 관중을 보고서는 “호러블”이라고 했다.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막은 이번 판정에 대해 외국 언론과 피겨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올림픽을 2연패한 독일의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는 독일 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화가 난다”고 했다. 비트는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김연아의 금메달을 확신했다. 소트니코바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심판들의 점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이번 판정 논란에 관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홈 쿠킹’이라는 표현을 썼다. 집에서 엄마가 먹기 좋게 잘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듯 소트니코바가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뉘앙스다.
프랑스 언론 레퀴프는 ‘스캔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번 판정 논란이 추잡스러울 정도라는 얘기다. 레퀴프는 “러시아는 역사상 첫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올림픽 챔피언을 심판들이 만들었다. 하지만 소트니코바는 금메달 자격이 없다. 이런 스캔들은 스포츠에 대한 불신이 계속되게 할 것”이라고 썼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석연치 않은 심판 구성 문제를 다뤘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9명의 심판 중에는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연맹 고위 임원의 아내가 포함됐고, 테크니컬 컨트롤러(난도 조정관)는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연맹 부회장이다. 9명의 심판 중에는 판정 담합에 연루돼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 우크라이나 심판도 있다.
한편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은 21일 “피겨 여자 싱글 ‘편파 판정’ 논란과 관련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담은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보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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