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지간서 지도자로 맞붙은 조범현-박경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2군데뷔 KT, SK와 첫 안방경기

“프로텍터도 안 벗었는데 발차기가 날아오더라고요.”

프로야구 SK 퓨처스리그(2군) 박경완 감독(42)이 회상한 KT 조범현 감독(54)의 흔한(?) 애정 표현법이다. 박 감독은 전주고를 졸업하고 신고선수(연습생) 포수로 막내팀 쌍방울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였던 1991년에 받은 연봉은 겨우 600만 원. 다른 구단에서 잔뼈가 굵어진 투수들이 박 감독의 사인을 따를 리가 만무했다. 쌍방울 투수들은 안타 하나만 맞아도 “내가 사인을 낼 테니 너는 공만 받으라”고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배터리 코치로 박 감독을 지옥훈련시킨 조 감독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또 투수들이 제멋대로 사인을 내기 시작하자 공수교대 때 더그아웃으로 들어서던 박 감독을 향해 하이킥을 날렸다. 그러면서 “네가 제대로 못하니까 투수들이 사인까지 내면서 고생한다”고 소리쳤다. 투수들 보고 박 감독 사인을 따르라고 무력시위를 벌인 셈이다.

두 사람은 2002년 겨울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됐다. SK는 자유계약선수(FA)였던 박 감독과 계약하며 갓 팀을 맡은 조 감독에게 취임 선물을 안겼다. SK는 이듬해 2000년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지난 시즌 박 감독이 SK에서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하자 조 감독이 있는 KT로 옮길 것이라는 풍문도 돌았다.

물론 박 감독이 지난 시즌 은퇴 후 곧바로 SK 2군 감독을 맡으면서 KT 유니폼을 입게 될 일은 없어졌다. 그 대신 두 사람은 맞대결 팀 사령탑으로 8일 오후 수원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만났다. 올해 2군 리그에만 참여하는 신생팀 KT의 사상 첫 번째 안방 경기였다.

이번에 스승은 하이킥 대신 애교로 제자에게 다가갔다. 조 감독은 경기 전 박 감독에게 “좋은 선수가 왜 이리 많으냐”며 “선수 좀 달라”고 말했다. SK는 이 경기에서 1군 선수로도 손색없는 안치용(35) 한동민(25) 김상현(34)을 3∼5번 타순에 배치했고, 14-2로 승리했다. 경기 후 인사하러 들른 박 감독에게 조 감독은 “선수 시절에는 말 잘 듣더니 이번에는 ‘점수 많이 내지 말라’는 말도 안 듣는다”며 웃었다.

수원=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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