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라이크 판정만 유독 검증의 사각지대에 있는 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07년부터 PFX(Pitch F/X) 시스템을 가지고 투구 분석 자료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투수가 던진 공이 어떤 지점을 통과했는지 cm 단위까지 측정해 알려줍니다.
그 뒤로 타자는 물론이고 심판들도 ‘선구안’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최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70만 개가 넘는 투구를 분석한 결과 메이저리그 구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 중 14%가 틀렸다고 합니다. 공 7개 중 1개는 스트라이크였는데 볼로 선언하거나 그 반대로 선언했던 겁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3볼 0스트라이크에서 심했습니다. 이때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한 공 중 18.6%는 사실 볼이었다고 합니다.
국내 프로야구는 자료가 부족해 정확한 비교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부 보여주지는 않지만 거의 모두 보여주는 비키니처럼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2011∼2013시즌 프로야구에서 구심이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린 공은 모두 28만3984개. 이 중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한 공은 31.3%(8만8942개)였습니다. 3볼 0스트라이크에서 이 비율은 50.7%로 올라갑니다. 이 상황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자가 5.9%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심판들 역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야구 규칙은 스트라이크를 정의하면서 “심판원이 ‘스트라이크’라고 불러줘야 스트라이크”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결국 규칙상 배터리(투수+포수)는 심판이 생각하는 스트라이크 존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메이저리그에서는 포수들의 ‘프레이밍(framing)’ 능력이 각광받게 됐습니다. 한국 야구팬들이 보통 ‘미트질’이라고 부르는 기술이죠.
세이버메트리션(야구 통계학자)들은 프레이밍 실력도 순위를 매겼습니다. 이를 보면 통산 타율이 0.237밖에 되지 않는 호세 몰리나(39·탬파베이)가 강팀이 즐비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8년째 뛰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2012년 프레이밍이 제일 좋은 포수였고, 지난해에도 그의 막냇동생 야디에르(32)에 이어 4위였습니다. 야디에르는 6년 연속 내셔널리그 포수 골드글러브를 탔습니다. 몰리나 형제 중 맏형 벤지(40)는 2002∼2003년 아메리칸리그 포수 골드글러브 수상자이고 말입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이렇게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SK는 지난 2년 동안 조인성(39)과 정상호(32)가 6 대 4 비율로 마스크를 나눠 썼습니다. 조인성이 공을 받았을 때는 상대 타자가 치지 않은 공 중 30.5%가 스트라이크였고, 정상호의 경우에는 31.8%였습니다. 물론 똑같은 투수의 공을 똑같은 경기에서 똑같은 심판이 판정할 때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기록만 갖고 정상호의 미트질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트질의 최종 목적이 실점을 막는 데 있다고 한다면 역시 정상호가 한 수 위입니다. 정상호가 마스크를 썼을 때 투수들은 삼진도 더 많이 잡았고, 볼넷도 적게 내줬습니다. 당연히 평균자책점도 더 낮았습니다. 조인성은 ‘앉아 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도루 저지에서도 정상호에게 뒤집니다. 방망이 솜씨도 정상호가 지난해 역전했습니다. 지난해 포수로 나왔을 때 OPS(출루율+장타력)에서 정상호는 0.622를 기록했는데, 조인성은 0.595에 그쳤습니다.
그렇다면 정상호를 SK 안방 터줏대감이던 박경완(42)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박경완과 정상호가 함께 뛴 2010∼2012년으로 범위를 바꾸면 박경완이 마스크를 썼을 때 스트라이크 비율은 31.4%, 정상호는 31.5%였습니다. 어쩌면 정상호는 풀 시즌을 뛰기 힘든 체력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과소 평가받는 포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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