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훔쳐도 못 잡으면 포수 탓? 투수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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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포수 로티노
넥센 포수 로티노
프로야구 넥센 외국인 선수 로티노가 ‘복덩이’로 연착륙하고 있습니다. 로티노가 포수 마스크를 쓴 15와 3분의 1이닝 동안 넥센은 상대 팀에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10이닝 이상 출전해 상대를 무실점으로 막은 포수는 로티노뿐입니다.

11일 경기 때 ‘제3의 포수’로 8회부터 2이닝을 책임졌지만 로티노는 사실 밴헤켄 전담 포수입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10일 경기에서 처음 로티노를 포수로 기용하면서 “선발 투수가 밴헤켄이라 둘 사이에 의사소통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나이트(39)는 외국인 투수지만 꼭 허도환하고 배터리를 이룹니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나이트가 허도환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초반 염 감독이 박동원을 주전 포수로 밀었을 때도 나이트는 허도환을 앉혔습니다. 나이트는 “호흡을 많이 맞춰본 까닭인지 (허도환이) 편하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파악하고, 무엇보다 실점 위기에서 긴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염 감독이 로티노를 나이트하고 짝을 맞춰주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도루 저지입니다.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로 305경기를 뛴 로티노지만 포수 전문 선수가 아니라 아직은 도루 저지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로티노는 이번 시즌 도루 2개를 내주는 동안 도루 저지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로티노가 나이트하고도 배터리를 이뤘다면 지금보다 도루를 더 많이 허용했을 확률이 큽니다. 밴헤켄은 왼손 투수고, 나이트는 오른손 투수니까요. 왼손 투수는 마운드에서 1루 베이스를 보고 있습니다. 상대 주자들이 리드를 크게 벌리기 어렵겠죠. 반면 오른손 투수는 3루를 보고 서기 때문에 도루 저지에 불리합니다.

실제 기록도 그렇습니다. 2011∼2013년 프로야구 기록을 보면 포수들의 도루 저지율이 마운드에 왼손 투수가 있을 때는 38.0%, 오른손 투수가 있을 때는 28.5%였습니다. 거의 10%포인트 차이입니다. 주전 포수가 백업으로 내려앉을 만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나이트는 상대 주자들이 9이닝당 1.97번 도루 시도를 할 정도로 투구 폼이 큽니다. 오른손 투수 평균 1.40개보다도 0.6개 가까이 많습니다. 전문 포수를 앉혀놓고도 이 정도인데 로티노와 짝을 이뤘다면 더 늘어났을 겁니다. 반면 밴헤켄을 상대로 한 9이닝당 도루 시도는 1.38개로 왼손 투수 전체 평균과 같았습니다. 특히 밴헤켄과 로티노가 짝을 이뤘을 때 도루 시도는 1.17개까지 낮아졌는데요, 밴헤켄이 견제를 아주 많이 하면서 로티노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타자가 들어서는 타석에 따라서는 어떨까요? 포수는 모두 오른손잡이입니다. 왼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포수 오른쪽을 가리게 됩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포수가 송구하는 데 애먹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기록으로는 차이가 미미한 수준입니다. 왼손 타자 타석일 때 도루 저지율은 30.4%, 오른손 타자는 31.9%로 1.5%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건 도루 시도 횟수입니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 도루를 시도하면 실패 확률이 올라가지만 도루 시도 횟수는 사실상 똑같습니다. 9이닝당 차이가 겨우 0.02번(오른손 투수 1.40, 왼손 투수 1.38)에 불과하니까요. 반면 왼손 타자가 들어섰을 때는 1.73번 뛰었는데 오른손 타자일 때는 도루 시도가 1.19번까지 떨어졌습니다. 성공률은 별 차이가 없는데 통념에 따라 왼손 타자 때 도루 사인을 많이 냈던 겁니다. 이렇게 야구 기록은 비키니 수영복처럼 보여줄 건 다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전부 다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외면하는 지도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 탓에 오늘도 엉뚱하게 까먹은 아웃 카운트가 늘어만 갑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 bigkini


#로티노#나이트#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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