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김기태 “제 탓이오, 제 탓이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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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경기 만에 전격사퇴 왜?
100% 전력 갖고도 성적부진에 괴로움… “충분히 반등할 수 있는데도 안 된다
자극 주려면 내가 물러나는 수밖에”… 사장-단장도 만류했지만 마음 못돌려

“이기지 못하면 잘릴 것이다. 이긴다면 잘릴 날을 좀 더 미룬 것뿐.”

메이저리그 네 개 팀에서 감독을 지낸 레오 듀로셔(1905∼1991)가 한 말입니다. 듀로셔는 이보다 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바로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 프로야구 LG 김기태 감독(사진)이 23일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난 건 역시 사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22일까지 4승 1무 12패(승률 0.250)로 LG가 최하위였던 건 맞습니다. 그래도 아직 17경기밖에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이 이렇게 물러나는 건 무책임해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 ‘형님 리더십’으로 유명했던 김 감독 모습과도 어울리지 않았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선수단이 자발적으로 삭발하고 치른 22일 경기에서 1-8로 패하자 김 감독은 “모든 건 감독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무게감이 남다른 발언이었습니다. 평소 이런 상황에서 “내일 경기 잘 준비하겠다”는 형식적인 말만 하는 게 김 감독의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김 감독이 가장 괴로워했던 건 이번 시즌 LG가 100% 전력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에도 LG는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이병규(9번)를 비롯해 돌아올 ‘자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어떤 선수를 2군으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전력이 탄탄했습니다. 김 감독은 22일 경기가 끝난 뒤 구단 고위층과 만나 사퇴 의사를 밝히며 “우리 팀 전력은 지금 베스트다. 충분히 반등할 수 있는데 안 된다. 내가 사퇴해 충격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대도 17경기 만에 자진 사퇴하는 건 너무 이른 게 아닐까요? 프로 원년(1982년)을 제외하면 1988년 태평양 강태정 감독이 15경기 만에 중도 퇴진한 게 최단 경기 기록입니다. 당시 강 감독은 8연패에 빠지며 중간 성적 1승 14패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사장과 단장까지 나서서 김 감독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설득했지만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거꾸로 그만큼 김 감독 가슴에 쌓인 게 많았다는 뜻일 겁니다. 사실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에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피력했었는데요. 그때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나갔는데 선수들 연봉 인상이 적다는 거였고, 또 하나는 코칭스태프 인선을 뜻대로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차명석 투수코치와 계약하지 못한 걸 많이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이때는 베테랑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이 적극 만류해 김 감독이 마음을 돌렸죠.

지난해 5월에는 김 감독 경질설도 돌았습니다. LG 관계자는 “우리가 특정 감독을 모셔오기로 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지만 원론적 차원에서 감독 교체를 검토했던 건 맞다”고 말했습니다. 소문이 도는 걸 뻔히 알면서 김 감독이 내색을 하지 않자 선수단이 하나로 뭉쳤고, LG는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 감독에게 몇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습니다. 대신 김 감독이 “갑작스럽게 자리를 내놓는 바람에 인사를 제대로 못했다. 선수단, 프런트, 그 밖에 고마운 분들은 조만간 따로 찾아뵙고 인사하겠다. 그 뒤로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구단 관계자가 전했습니다.

김 감독이 바라는 건 2001년 같은 상황일 겁니다. 당시 LG는 9승 1무 25패(승률 0.265)로 최하위에 머물렀고 이광은 감독은 사퇴했습니다. 그 뒤 김성근 감독대행 체제로 치른 경기에서 49승 2무 47패(승률 0.538)로 승률이 2배 이상으로 좋아졌습니다. 과연 올해 LG 운명이 김 감독 바람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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