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열 “우승하는 법 이제야 알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4월 29일 06시 40분


노승열의 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 우승 소식을 전한 PGA 투어 홈페이지. 사진|PGA 투어 홈페이지 화면 캡처
노승열의 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 우승 소식을 전한 PGA 투어 홈페이지. 사진|PGA 투어 홈페이지 화면 캡처
■ ‘골프신동’ 노승열 PGA 첫승 여정

중3 때 아마 1인자…고1 때 국가대표
프로 데뷔 후 亞·유럽투어서 승승장구
2012년 PGA 투어 입성하며 방랑 끝
작년 PGA 시드 잃을 위기서 기사회생
“많은 실패 딛고 우승 이끌어내 뿌듯”

“노승열은 천재다. 아니 천재가 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노구현 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노승열(23·나이키골프)은 전형적인 노력형 골퍼다.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며 입을 모은다. 강원도 속초 출신인 노승열은 어려서부터 골프신동으로 통했다. 14세 때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했고, 15세 (2006년)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늘 기대주라는 평가를 달고 살았다. 2012년 PGA투어에 진출했을 때도 미국 언론 매체에서 선정한 유망주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이번 우승으로 기대주가 아닌 ‘스타’로 우뚝 섰다.

● 14세 때 태극마크 단 골프신동

‘골프신동’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녔다. 또래 중에선 단연 으뜸이었고, 경쟁 상대는 3∼4세 더 많은 선배들이었다. 당시엔 김경태(28·신한금융그룹)가 중학교와 고교 무대를 휩쓸던 시기였다. 김경태와는 같은 연습장에서 훈련했다.

2005년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처음으로 아마추어 1인자가 됐다. 이듬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러나 기대했던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 밀려나면서 처음 시련을 겪었다. 당연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될 것으로 예상했기에 탈락은 큰 충격이었다. 그의 부모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프로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노승열은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나이가 어려 국내에서는 프로생활(만 18세 이상)을 할 수 없었던 탓에 아시안투어로 날아갔다.

아시안투어 생활은 고됐다. 어린나이에 프로가 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동남아시아를 주 무대로 펼쳐지는 아시안투어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떠돌아 다녀야 한다. 마땅히 캐디를 할 사람이 없었기에 아버지가 백을 멨다. 부친 노 씨는 이전까지 직장 생활을 했다. 아들이 프로가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캐디를 자처했다.

다행히 일찍 꽃을 피웠다. 2008년 아시안투어 미디어 차이나클래식 정상에 오르며 주목받았고, 그해 아시안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엔 아시안투어와 유러피언투어가 공동 개최하는 메이뱅크 말레이시안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안투어 최연소 상금왕이 됐다. 우승 당시 18세282일로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18세213일·2009년 조니워커클래식 우승)가 보유하고 있는 유러피언투어 최연소 우승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한 노승열은 2012년 미 PGA 투어를 노크했다.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하며 출전권을 따냈다. 꿈의 무대를 바라보며 시작한 방랑생활도 끝이 났다.

● “우승 압박 이겨내 뿌듯하다”

2008년 GS칼텍스 매경오픈, 2012년 코오롱 한국오픈. 두 대회는 노승열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모두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우승에 실패했다. 특히 2012년 한국오픈에서는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날 양용은에게 10타 차 역전패를 당했다. 노승열은 “그때는 우승하는 방법을 몰랐다. 우승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했고 그러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일이 많았다”고 되돌아봤다.

취리히클래식 우승으로 골프에 새로운 눈을 떴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우승하는 법을 알게 됐다”면서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서 경기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과 압박을 갖게 된다. 이전까지는 그런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이번에 경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승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됐다”고 만족해했다.

2013년 힘든 시기를 잘 넘긴 것도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노승열은 지난해 상금랭킹 153위로 밀려나 PGA 투어 시드를 잃을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인 웹닷컴 투어 파이널 시리즈에서 25명까지 주어지는 출전 티켓을 따내면서 기사회생했다. 특히 9월 내이션와이드 칠드런스 호스피털 챔피언십 우승은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는 “지난해 중반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내려놓는 계기가 됐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면서 “웹닷컴 투어 우승 그리고 이번 대회 우승까지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성공의 길을 찾은 것 같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승으로 이끌어 낸 내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 노승열은?

1991년 5월29일 출생 (강원도 속초)/ 경기고 졸-고려대 재학 중/ 2005∼2006 골프 국가대표/2005 한국주니어선수권 우승/ 2005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 우승/ 2008인도SAIL오픈 2위/ 2008 APGA투어 미디어차이나클래식 우승/ 2010 메이뱅크 말레이시아 오픈 우승/ 2011 레이크 말라렌 상하이 마스터스 공동 3위/ 2013 PGA 웹닷컴투어 내이션와이드 칠드런스 호스피털 챔피언십 우승/ 2014 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 우승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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