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목숨같은 미트에 새긴 ‘父母’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8일 어버이날… 녹색 다이아몬드 -NBA 코트 수놓은 효심

삼성의 신예 포수 이흥련은 “미트에 ‘父母(부모)’라는 단어를 새겨넣은 뒤 신기하게 야구가 잘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음력 생일인 9일 잠실 경기 후 부모님과 조촐한 식사 자리를 갖기로 했다.
삼성의 신예 포수 이흥련은 “미트에 ‘父母(부모)’라는 단어를 새겨넣은 뒤 신기하게 야구가 잘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음력 생일인 9일 잠실 경기 후 부모님과 조촐한 식사 자리를 갖기로 했다.

한국 골퍼들은 몇 해 전부터 일본 무대를 휩쓸고 있다. 올해 일본 프로골프 투어 남녀 상금 랭킹 1위도 김형성(34)과 이보미(26)다. 한국 골퍼들이 왜 강한지를 분석하는 것은 일본 골프 잡지의 단골 메뉴다. 그중 다치카와 마사키 일본 골프다이제스트 기자는 ‘효(孝)’ 정신을 비결로 꼽았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자기를 키우기 위해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안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야구에서도 그렇다. 좋은 선수가 반드시 효자인 건 아니다. 하지만 효자 선수 중에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다. 어버이날을 맞아 효심이 극진하기로 알려진 한국 프로야구의 효자 선수들을 소개한다.

삼성의 ‘주전’ 포수 이흥련(25). 그가 없었다면 올해 삼성이 어떻게 야구를 했을까 싶다. 시즌 시작과 함께 삼성은 주전 포수 진갑용과 백업 포수 이지영을 부상으로 잃었다. 쓸 선수가 없어 그나마 1군으로 불러 올린 게 기대주 이흥련이었다.

공만 받아줘도 다행이다 싶었으나 이게 웬걸. 안정적인 수비 실력과 투수 리드로 투수들을 이끌더니 요즘엔 방망이까지 잘 친다. 1할대에 머물던 타율을 0.250까지 끌어올렸고, 타점도 9개를 기록했다. 삼성이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7일 현재 14승 11패로 3위에 오른 것은 새로운 주전 포수 이흥련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팀에도 효자지만 그는 집에서도 효자다. 그의 미트에는 ‘父母(부모)’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는 야구를 그만두려 했다. 두 차례의 어깨 수술이 너무 힘들었다. 당시 그를 붙잡은 게 부모님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그를 뒷바라지했다. 그를 위해 당신들의 인생을 바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날부터 그는 포수 미트에 ‘父母’를 새겼다. 그는 “잡념이 생기고 자신감이 없어질 때마다 미트 위 두 글자를 보면 생각이 말끔히 정리된다. 항상 부모님이 나를 응원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LG 마무리 투수 봉중근은 “글러브에 있는 아버지(고 봉동식 씨)가 항상 지켜봐 주시고 돌봐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봉중근은 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선산에 묻힌 아버지를 찾을 예정이다.
LG 마무리 투수 봉중근은 “글러브에 있는 아버지(고 봉동식 씨)가 항상 지켜봐 주시고 돌봐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봉중근은 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선산에 묻힌 아버지를 찾을 예정이다.
LG 마무리 투수 봉중근(34)은 작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 봉동식 씨의 사진을 부착한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봉 씨는 간암으로 투병하던 2012년 9월 21일 평생의 꿈이던 시구를 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세상을 떠났다. 봉중근은 “당시 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글러브에 사진을 붙이게 됐다”고 했다.

두산 외야수 민병헌(27)도 누구나 인정하는 효자다. 그는 “어머니를 위해 야구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중1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 민병헌이 프로에 입단하던 당시 스카우트들이 “저런 선수는 꼭 성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을 정도. 민병헌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엄마를 보면서 어릴 적부터 야구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키워 왔다. 야구를 더 잘해서 엄마를 호강시켜 드릴 것”이라고 했다.

넥센 외야수 이성열(30)은 몸으로 효도를 실천한다. 마무리 훈련이 끝나고 모든 선수가 휴식을 취하는 12월이 되면 그는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전남 순천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보름가량 고향집에 머물며 농사일을 돕는다. 그의 집은 소를 키우는데 아침 일찍 여물을 주는 등 힘 쓰는 일을 주로 한다. 그는 “농사보다는 야구가 훨씬 쉽다. 고향에 갈 때마다 안일해진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이성열은 3, 4일 KIA와의 광주 경기에서 어머니 임해숙 씨가 보는 앞에서 연이틀 홈런을 쳤다. 임 씨는 지난달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수술을 받은 직후 아들의 경기를 보러 왔었다.

올해 수준급 선발로 발돋움한 한화 왼손 투수 유창식(22)은 고교 최대어로 평가받던 2011년 홀어머니를 위해 메이저리그 대신 한국 야구에 남기로 했다. 어머니 최숙자 씨는 식당일을 하면서 그를 뒷바라지했는데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로 유명했다고. 유창식은 “중3 때 야구가 너무 힘들어 가출하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그럼 나도 나가버리겠다’고 하셨다. 이후 군소리 없이 야구만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SK 마무리 투수 박희수(31)는 이와 반대로 어머니에게 친근한 아들로 유명하다. 2012년 시상식 때 어머니 이순덕 씨와 포옹하며 기쁨을 표하는 모습을 본 SK 관계자는 “아들이 그러기 쉽지 않은데 너무 부러운 모습이었다”고 했다.

이들 외에도 음으로 양으로 효도를 실천하는 야구 선수가 많다. 부모에게 최고의 효도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플레이하는 것이다. 모든 효자 선수들, 파이팅.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흥련#봉중근#민병헌#이성열#유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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