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프로야구 한화 유창식(22)이 틀렸습니다. 유창식은 7일 경기 전까지 평균자책점 1.82로 이 부분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볼넷도 가장 많았죠(29개).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볼넷도 안타 맞는 거랑 똑같아요. 막아내면 그만”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볼넷이 가장 많은 선수가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한 건 메이저리그에서도 두 번밖에 없는 기록. 샘 존스(샌프란시스코)가 1959년 처음으로 볼넷을 109개나 내주면서 평균자책점 2.83을 찍었고, 샘 맥도웰(클리블랜드)은 1965년 존스보다 볼넷은 더 많고(132개) 평균자책점(2.18)은 더 낮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아직 국내 프로야구에는 이름이 ‘샘’인 투수가 없어 그런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유창식도 7일 잠실 경기에서 4와 3분의 1이닝 동안 볼넷 4개(7피안타)를 내주면서 6실점해 평균자책점 선두 자리를 내놨습니다. 과연 투수에게 볼넷은 얼마나 나쁜 기록일까요?
○ 선두타자 볼넷은 죄악?
이 경기에서 유창식은 1회 2점, 4회 4점 실점했습니다. 모두 선두타자 볼넷이 화근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해설자들의 단골 멘트가 떠오릅니다. “선두타자한테는 볼넷보다 안타가 낫다.” 심지어 “선두타자 볼넷은 실점 확률이 70∼80%”라고 덧붙이는 해설자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2011∼2013 프로야구에서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줬을 때 실점할 확률은 43.6%로 안타 때(52.5%)보다 낮습니다. 안타에는 2루타 이상 장타가 들어있어 생긴 일입니다. 따라서 범위를 단타로 좁혀 보면 실점 확률은 43.8%가 나옵니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사실상 차이가 없는 셈이죠. 평균 실점도 볼넷 0.895점, 단타 0.887점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어떤 해설자들은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면 야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야수들이 타구를 잡아내는 범타처리율(DER)을 보면 선두타자 볼넷 뒤에는 69.5%, 아닐 때는 69.7%로 이 역시 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선두타자 볼넷에 대한 ‘가상의 공포’가 너무 지나친 것이죠.
○ 그래도 볼넷은 죄악!
큰 틀에서 보면 볼넷이 실점을 부르는 ‘요물’인 건 맞습니다. 투수들은 안타를 하나 맞은 이닝에서는 평균 0.248점을 내줍니다. 반면 볼넷을 하나 내주면 0.734점으로 실점이 3배 가까이로 늘어납니다. 안타에 곧바로 실점인 홈런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차이죠.
이는 볼넷이 안타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피안타율의 경우 볼넷이 하나도 없는 이닝은 0.238밖에 되지 않지만 볼넷 하나를 내주면 0.306, 두 개는 0.350, 세 개 이상은 0.396으로 수직 상승합니다. 자연히 실점도 차곡차곡 쌓입니다(표 참조).
투구 수 부담이 늘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볼넷은 사실 ‘볼 일곱’입니다. 이닝당 평균 투구 수의 경우 볼넷이 하나도 없을 때는 14.5개. 볼넷 하나를 내주면 21.1개, 두 개는 27.9개, 세 개 이상은 35.8개로 늘어납니다. 반면 안타는 하나당 4개꼴로 투구 수를 늘어나게 합니다. 결국 볼넷이 안타보다 경기 시간을 2배 가까이로 늘리는 겁니다.
○ 차라리 홈런!
8일 경기 전까지 경기당 한 팀 평균 득점은 5.5점으로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많습니다. 외국인 타자 가세로 홈런이 늘어서 그런 걸까요? 천만의 말씀. 경기당 홈런은 0.89개로 프로야구 33년 역사 중 9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신 투수들이 한 경기(9이닝)에 볼넷 4.1개를 내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볼넷이 많았던 건 2001년(4.2개) 한 해뿐입니다.
야구 선수들이 강심장이 되도록 돕는 책 ‘고개를 들고 뛰어라(Heads-up baseball)’에서는 두드려 맞을까 겁나 볼넷을 남발하는 투수에게 타격 연습 때 배팅 볼을 맡겨 보라고 조언합니다. 잘 치라고 던져줘도 타격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몸소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볼넷은 100% 출루지만 최근 3년간 안타로 출루한 확률은 30.2%에 그쳤습니다.
그러니 부탁건대 투수 여러분 제발 ‘볼질’ 좀 그만! 홈런 맞으면 상대 칭찬이라도 하지, 이건 원, 속 터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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