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언제나 그렇듯 당대의 전술 및 트렌드의 향연으로 주목받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2000년대 축구사에서 흔치 않게 ‘스리백’을 가동한 팀이 정상에 올랐다. 브라질이 3R(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의 공격력과 실리 축구를 결합시킨 3-4-1-2 포메이션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준우승 팀 독일도 스리백과 포백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 2002 월드컵은 비교적 다양한 포메이션이 혼재했던 대회로 기록될 만하다. 기후가 변수였던 대회이니만큼 체력과 기동력 면에서 준비가 잘된 팀들이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6년 독일에서는 비율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팀이 많았으나 그래도 이 월드컵의 포메이션은 4-2-3-1이라 할 만하다. 결승전에 오른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모두 4-2-3-1을 사용했다. 특히 프랑스의 노장들인 파트리크 비에라와 클로드 마켈렐레가 창조적 플레이메이커(지네딘 지단)를 뒷받침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듀오’의 정석을 보여줬다. 4-2-3-1의 유행은 2010년 남아공에서 더욱 강화됐는데 챔피언 스페인을 비롯해 네덜란드, 독일, 브라질, 가나 등이 모두 이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은 월드컵에 임하는 대부분 팀이 사실상 수비적 안정성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모두가 수비를 중시하는 상황에서 스페인은 FC 바르셀로나로부터 유래한 세밀한 패싱 게임과 조직적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극복해내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마르셀로 비엘사의 칠레 같은 팀을 제외하면 사실상 ‘4-2-3-1의 월드컵’이라 해도 좋을 남아공 월드컵과는 달리 곧 막이 오를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한결 다양해진 전술적 스펙트럼이 나타날 듯하다. 일단 브라질에서는 어느 한 가지 포메이션이 대회를 주도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4-3-3을 기본 포메이션으로 삼는 팀의 수가 4-2-3-1을 활용하는 팀의 수보다 결코 적지 않은 데다 4-4-2 계열(4-4-2, 4-2-2-2, 4-4-2 다이아몬드) 포메이션을 애호하는 팀들도 적잖이 관찰된다. 또한 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가 앞장서 있던 스리백 유파에 최근에는 네덜란드의 루이 판할 감독이 가세하면서 스리백의 효용성을 시험대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포메이션의 팔색조’ 체사레 프란델리의 이탈리아는 매 경기 상황에 따라서 다른 포메이션을 채택할 가능성마저 있다.
브라질에서 나타날 전술적 다양성은 최근의 클럽 축구를 통해서도 예측할 수 있다.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실리적이면서도 역동적인 4-4-2가 세계 축구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4-3-3과 4-4-2를 위력적으로 병행했다. 잉글랜드에서는 리버풀이 여러 포메이션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돌풍의 주인공이 됐고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유벤투스의 스리백이 유효했다. 전술적 극단을 달리는 주제프 과르디올라(바이에른 뮌헨)와 조제 모리뉴(첼시)의 시대도 아직 저물지 않았다. 어쩌면 브라질 월드컵이야말로 이러한 클럽 축구계의 복합적 트렌드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무대가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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