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AG때 손목 통증 숨긴 채 수문장 활약 결국 ‘손목뼈 실금’ 수술로 8개월 이상 공백 부상 사전 방지·차단…테이핑·아이싱 심혈
“아니, 이 녀석이 계속 (부상을) 숨겼더라고…. 그래도 어떻게 해? 그냥 참았지 뭐.”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때를 떠올리던 축구대표팀 김봉수 골키퍼 코치의 솔직한 얘기다. 김승규(24·울산)는 당시 아시안게임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이었다. 그런데 대회를 치르던 도중 그는 오른 손목에 무리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볼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리고 착지하는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통증은 심해졌다. 물론 쉴 여력도 없었다. 코칭스태프에게 “못 뛰겠다”고 밝힐 용기도 없었다. 아시안게임대표팀 멤버는 18명. 그 중 골키퍼는 그와 이범영(25·부산)뿐이었다. 누구라도 한 명이 빠지면 팀이 위기에 처할 것이 뻔했다. 기로에 선 김승규의 선택은 간단했다. 그냥 참는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그라운드로 향했다.
● 아쉬움보다 컸던 배움의 계기
한국축구는 3위로 광저우아시안게임을 마쳤다. 2010년 11월 23일 광저우 톈허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4강전. 당시 아시안게임대표팀을 이끌던 홍명보 감독은 0-0으로 맞선 연장 후반 14분 승부차기를 염두에 둔 마지막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승규를 빼고, 이범영을 투입했다. 실책이었다. 한국수비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UAE가 결승골을 넣었다. 벤치에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을 지켜본 김승규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남은 경기는 이란과의 3·4위전. 어느 종목이든 아시안게임 우승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는 병역면제혜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아무 매력도, 동기부여도 없는 승부. 홍 감독도 “선발 명단을 짤 때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한 그 경기였다. 김승규는 3골을 내줬지만 동료들의 4골로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귀국하자마자 병원을 찾았고, ‘손목뼈 실금’ 진단을 받았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김봉수 코치는 크게 화가 났다. “어떻게 끝까지 부상을 숨겼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제자의 땀과 열망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결국 따뜻한 메시지 전달만이 수술 후 8개월 이상 쉬게 된 제자에게 스승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이제는 사전관리!
부상의 여파는 컸다. 꿈에 그리던 2012런던올림픽에도 못 나갔고, 소속팀에선 선배 김영광(31·경남 임대)에 이은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묵묵히 버틴 끝에 지금은 울산의 주전 골키퍼가 됐고,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도 발탁됐다. 2010남아공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팀 ‘터줏대감’이 된 정성룡(29·수원)을 어느새 위협하는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김승규가 빠짐없이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몸 관리다. 크건, 작건 부상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밝히고 정확히 진단받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4년 전의 교훈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진행 중인 대표팀 훈련에 여념이 없는 그의 손목에는 마치 복싱선수를 연상케 하는 테이핑이 가득하다. 부상 이후 관리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한 줄씩 테이핑을 하다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 훈련 때나 실전 때나 항상 테이핑을 하고, 아이싱을 통해 혹시나 모를 부상을 차단한다. 김승규는 “아픔을 숨기는 것처럼 미련한 건 없다. 팀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미련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