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요즘 참 바쁘다. 지방선거가 열린 4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종합일간지와 스포츠전문지, 각종 방송에서 온 전화로 신문이나 방송에 낼 ‘희귀 자료 없냐’는 질문과 만나 달라는 요청이다. 6일엔 모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5시간 넘게 녹화까지 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 때만 되면 반복되는 현상이다.
‘축구자료 수집가’ 이재형 베스트일레븐 이사(53)는 이렇게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도 또 다른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한국과 브라질이 수교한 지 55주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한·브 축구 외교 53주년인지는 잘 모른다. 1961년 프로축구팀 마르레이라 팀이 처음 방한하면서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 외교가 시작됐다. 이런 스토리를 브라질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마르레이라 이후 1970년 플라멩구, 1972년 산투스가 방한했고, 브라질 대표팀은 1997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1999년과 2013년까지 ‘삼바축구 대표’는 3차례 방한했다. 이 이사는 “브라질 대표팀과 클럽 팀이 방한했을 때 만든 포스터와 팸플릿, 사진 등 50여 점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전적으로 이 이사 개인이 혼자 하는 것이다. 당초 기업의 후원을 받아 크게 열 계획이었으나 여의치 않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상파울루축구협회 관계자와 함께 상파울루 시내에서 조그맣게 연다.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74)가 산투스 시절 입었던 유니폼 등 브라질 관련 축구 물품도 있다. 국내 일정상 현지 시간 17일 브라질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날부터 한국과 벨기에의 H조 3차전이 열리는 26일까지 10일간 열 계획이다.
“월드컵이란 큰 행사로 브라질과 한국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월드컵에 집중하느라 한국과 브라질의 외교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양국이 축구로 어떤 외교를 펼쳐 왔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서울 성북초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이 이사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뺑뺑이(추첨)로 축구팀이 없는 홍익중에 입학하면서 가슴에 ‘한(恨)’을 품고 살았다. 인근 경신중 축구팀 훈련과 경기를 지켜보는 게 낙이었다. 우표 등 각종 축구 관련 기념품을 모으는 것도 그때 생긴 취미였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해 회사를 다니면서도 축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축구전문잡지 ‘월간축구(현 베스트일레븐)’의 기자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가면서 인생은 바뀌었다. 현장을 돌며 더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1996년 2002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자료 수집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월드컵 개최 기념으로 1997년 아크리스백화점에서 소장하고 있던 축구자료를 전시했다.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기념품 수준의 것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유물’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가 됐다.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 안정환의 골든 볼, 스페인과의 8강 승부차기 때 마지막 키커 홍명보가 찬 공을 각각 에콰도르와 이집트까지 날아가서 찾아왔다. 42개국을 돌아다니며 4만여 점을 모았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자료 구입비와 여행비에 썼다. 30년 넘게 약 20억 원을 썼는데도 아깝지 않다. 이번에도 사재를 털어 떠나지만 새신랑이 신혼여행 가듯 행복하기만 하단다. 참고로 그는 아직 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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