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땜질 GK’에 당한 ‘120분 영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World Cup Brasil 2014]
코스타리카 특급 수문장 나바스
네덜란드 소나기슈팅 잘 막았지만 승부차기선 하나도 못 막고 눈물
연장 막판 투입 상대 골키퍼 크륄은 두 차례나 막아내며 영웅 떠올라

네덜란드의 구세주 크륄, 위대한 패자 코스타리카 나바스 연장 후반 추가시간에 투입된 네덜란드 골키퍼 팀 크륄이 코스타리카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이클 우마냐의 슛을 왼팔을 쭉 뻗어 막아내고 있다(위쪽 사진). 반면 연장까지 120분 동안 믿기 힘든 선방 쇼를 펼친 코스타리카의 수문장 케일러 나바스는 승부차기에서 네 차례의 슛을 모두 허용하고 말았다. 사우바도르=GettyImages 멀티비츠
네덜란드의 구세주 크륄, 위대한 패자 코스타리카 나바스 연장 후반 추가시간에 투입된 네덜란드 골키퍼 팀 크륄이 코스타리카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이클 우마냐의 슛을 왼팔을 쭉 뻗어 막아내고 있다(위쪽 사진). 반면 연장까지 120분 동안 믿기 힘든 선방 쇼를 펼친 코스타리카의 수문장 케일러 나바스는 승부차기에서 네 차례의 슛을 모두 허용하고 말았다. 사우바도르=GettyImages 멀티비츠
“오늘 경기는 오직 한 선수를 위해 마련된 자리다.”

5만1000여 명의 관중과 세계 각국의 취재진은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브라질 월드컵 8강전이 열린 6일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폰치노바 경기장. 경기가 끝나기 5분 전까지 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코스타리카의 수문장 케일러 나바스(28·레반테 UD)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를 제외하고 경기장에서 뛰는 21명의 선수가 모두 그를 위해 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였다면 그는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이었다.

네덜란드는 8강에 오른 팀 중에서 최고의 공격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16강까지 모두 12골을 몰아넣으며 화끈한 골 잔치를 벌였기 때문이다. 득점원도 다양했다. 로빈 판페르시를 비롯해 베슬레이 스네이더르, 아리언 로번, 멤피스 데파이 등 무려 7명이 골 맛을 봤다. 이날도 네덜란드는 초반부터 코스타리카를 몰아붙이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나바스의 존재였다.

이날 나바스는 ‘특급 선방 쇼’를 펼쳤다. 이날 20개의 슈팅 중 무려 15개가 유효 슈팅일 정도로 네덜란드의 슛 정확도는 높았다. 하지만 골망을 흔들 것 같았던 슈팅들은 번번이 나바스의 손과 발에 막혀 튕겨 나갔다.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네덜란드가 일찌감치 두 골 이상은 넣어 승부를 갈랐을 것이다.

완벽한 골 기회를 놓친 판페르시와 로번은 나바스의 신들린 듯한 선방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덜란드 응원단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졌다. 행운의 여신도 그의 편이었다. 스네이더르가 때린 두 번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네덜란드는 세 차례나 골대를 맞히는 지독한 불운에 시달렸다. 연장전까지 120분의 경기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나바스의 활약을 앞세운 코스타리카의 승리를 점치는 분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남아 있었다. 연장 후반 추가시간 네덜란드는 마지막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120분간 무실점으로 버틴 야스퍼르 실레선을 빼고 팀 크륄을 투입했다. 승부차기에서 크륄은 코스타리카의 두 차례 슈팅을 막아냈다. 반면 나바스는 단 한 번도 막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4-3 승리. 120분간 영웅으로 활약한 나바스는 승부차기에서 맥을 못 추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나바스는 영웅의 자리와 함께 승리까지 놓쳤지만 전 세계에 코스타리카의 축구를 알렸다.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로 뽑힌 그에 대해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할 감독도 “나바스의 선방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연장전과 승부차기는 없었을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경기가 끝난 뒤 1시간 만에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많은 눈물을 흘린 듯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그는 “선수단이 하나로 똘똘 뭉쳤기에 (8강 진출이) 가능했던 일이다. 코스타리카 축구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려서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벨기에와의 8강전에서 전반 8분 터진 곤살로 이과인의 골에 힘입어 24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와 10일 결승 티켓을 놓고 맞붙는다. 개최국 브라질은 치아구 시우바, 다비드 루이스의 연속 골을 앞세워 콜롬비아를 2-1로 꺾었다. 브라질은 프랑스를 1-0으로 제압한 독일과 9일 준결승전을 벌인다.

사우바도르=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케일러나바스#팀크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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