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야구 기자로는 유일하게 한국 야구 3대 참사의 현장에 모두 있었습니다. 야구 관계자들이 꼽는 한국 야구 3대 참사는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그리고 지난해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입니다.
삿포로에서 한국은 대만과 일본에 연달아 패하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도하에서는 대만은 물론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까지 패했지요. 지난해 타이중 WBC 1라운드에서는 복병 네덜란드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2, 3차전에서 호주와 대만을 꺾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실패한 경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3번의 참사를 눈앞에서 지켜본 기자로서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한국 야구 대표팀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야구도 인사(人事), 즉 선수 구성이 만사(萬事)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KBA)는 14일 기술위원회를 열고 37명의 2차 엔트리를 발표했습니다. 최종 엔트리(프로 23명, 아마 1명)는 이달 말 발표할 예정입니다.
2차 엔트리 발표 후 벌써 적지 않은 후폭풍이 일고 있습니다. 왜 이 선수는 빠졌고, 저 선수는 포함됐느냐 하는 갑론을박이 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별 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큰 그림에서 선수 구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보려 합니다.
먼저 선수들의 ‘이기심’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태극마크가 선수 생활의 목표인 아마추어 선수들과 달리 태극마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프로 선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얻는 건 별로 없는데 부담은 큰 탓입니다. 개별 면담을 통하건, 간접적으로 의견을 전달받건 이런 선수들은 과감하게 엔트리에서 빼야 합니다.
이에 비해 이대호(소프트뱅크)나 봉중근(LG)처럼 태극마크를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선수도 많습니다. 경험이 조금 부족해도, 이름값이 조금 떨어져도 하고자 하는 선수를 데려가야 합니다. 국제대회 같은 단기전의 성패는 집중력과 절실함에 달려 있습니다. 1, 2회 WBC와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전력을 갖춰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아닙니다. 병역이든 애국심이든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선수들을 적절히 기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돈이건, 병역 혜택이건 뭔가 확실한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동기가 있어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애국심은 강요할 수도 없고 선수들이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고참 선수 중용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테랑들은 체력이 문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한 고참 선수는 “시즌을 소화하면서 모든 힘을 다 쏟은 탓인지 막상 국제대회에서는 방망이가 돌아가질 않더라. 열심히 안 하려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일찌감치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삼성)이 차라리 멋진 선수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적절한 긴장감 유지입니다. 시드니 올림픽 초반 부진하던 한국 대표팀은 ‘도박 파문’ 이후 분위기를 일신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2006년 WBC에서는 스즈키 이치로의 ‘30년 발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한국 야구 무시 발언이 선수단을 하나로 결속시켰습니다. 반면 조금이라도 방심이 깃든 순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금메달을 당연시했던 도하 아시아경기, 마음은 이미 4강에 가 있었던 지난해 WBC에서는 참패를 당했지요. 코칭스태프와 KBO, 그리고 야구협회가 함께 고민해 최상의 답안지를 내놓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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