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가 시작된 22일 사직구장. 경기 전 홈팀인 롯데가 덕아웃으로 사용하는 1루 덕아웃 뒤쪽이 시끄러웠다. 알고 보니 인부들이 덕아웃으로 출입하는 복도 벽에 대형 LED TV를 설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날부터 프로야구는 ‘한국형 비디오판독’으로 불리는 ‘심판합의판정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날 프로야구가 펼쳐진 4개 구장에서는 갖가지 진풍경이 연출됐다. 사직구장의 갑작스러운 TV 설치 작업도 그 중 하나였다.
규정상 덕아웃 내에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비롯해 전자장비를 들여놓을 수 없다. 다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덕아웃 뒤나 관중석에서는 TV를 비롯한 전자장비를 활용해 구단 직원이 TV중계를 시청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런데 최초 판정이 이뤄진 뒤 30초 이내(이닝교대나 경기종료 시에는 10초 이내)에 감독이 심판에게 합의판정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롯데는 아예 덕아웃 바로 뒤에 TV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롯데 김시진 감독은 “케이블TV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보다 5∼6초 늦게 중계를 탄다. 집사람이 ‘집에서 야구를 볼 때 야구장에서 뭔가 일이 벌어져 팬들의 함성이 들리는데 TV 중계에서는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 스마트폰이나 DMB 등으로 경기중계를 보면 TV로 보는 것보다 늦게 중계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화면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이와 함께 선수단 미팅을 통해 약속을 정하기도 했다. 오심이 발생했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수와 코치가 감독에게 양손으로 TV를 뜻하는 네모 모양을 크게 그리도록 했다.
곧이어 원정 삼성 선수단이 사직구장에 도착했다. 류중일 감독은 “롯데에서 1루 쪽 덕아웃 바로 뒤에 TV를 달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 구단 직원에게 “원정 팀에도 똑같이 TV 설치해달라고 롯데에 부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 감독은 “그렇잖아도 KIA에서 우리 구단에 연락이 왔다. 대구구장이 열악해 TV를 달아줄 데가 마땅치 않지만 우리는 덕아웃 뒤 원정 라커룸에 TV를 설치해주기로 했다. 이런 건 KBO에 공식적으로 요청해 전 구장에 홈·원정 가리지 말고 공평하게 TV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사직뿐 아니라 다른 구장에서도 감독과 선수들은 심판합의판정이 주요화제였다. 광주구장의 LG 양상문 감독은 경기 전 이와 관련해 “코치들과 여러 가지 의논하느라 늦게 나왔다”고 했고, KIA 선동열 감독도 “선수와 코치들에게 확신이 있을 때 분명하게 어필해 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잠실의 두산 송일수 감독은 “항의에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고 했고, SK 이만수 감독은 “아직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면서 “아무래도 요청 횟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팀에서도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부담은 심판도 마찬가지였다. 한 심판은 “만약 요청이 들어오면 심판실에 모여 영상을 보며 합의하게 된다”며 “우리도 판정에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한편 합의판정 시행 첫날인 이날 감독의 요청은 한 건도 없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이 한 번 갈등을 하다 들어가는 장면은 있었다. 3회말 1사 2루서 투수 견제구에 2루주자 손아섭이 슬라이딩으로 귀루하는 장면에서 2루수 나바로가 태그를 했는데, 심판의 세이프 판정이 나오자 큰 동작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류 감독이 덕아웃 난간 앞으로 나올까말까 하는 순간 유격수 김상수가 ‘아니다’는 수신호를 해 류 감독은 덕아웃으로 철수했다. TV 리플레이 화면상으로 세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