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렁슬렁 뒷짐을 지고 탁구장을 왔다 갔다 했다. 우두커니 선수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구경꾼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그러기를 30분. 갑자기 탁구채를 잡았다. 한 선수를 지목해 집중 교육시키기 시작한 것. 눈빛부터 달라졌다. 20여 분간 탁구채를 휘두르며 상대 선수를 몰아붙였다. 선수의 입에서 “조금만 쉬었다가 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유승민 탁구대표팀 코치(32)는 그제서야 탁구채를 놓고 땀을 닦았다.
유 코치는 ‘탁구 신동’이라 불렸다. 뛰어난 실력으로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남규 대표팀 감독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16년 만의 금메달이었다.
그는 10년 넘게 한국 남자 탁구의 대들보로 활약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을 마친 뒤 그는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실력은 여전히 국내 최정상이었지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독일로 건너가 프로리그 활동에만 집중했다.
2년 만에 그는 다시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코치로 남자 탁구 대표팀에 합류했다. 23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2년 만에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고향 같은 곳이지만 2년간 편한 생활을 하다 다시 틀에 맞춘 생활을 하니 힘이 든다”고 웃었다.
그는 6월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려 했지만 대한탁구협회의 간곡한 요청에 계획에 없던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대표팀이 인천 아시아경기대회(9월)를 앞두고 있는 만큼 도움을 주고 싶어 승낙했다”고 말했다.
한국 남자 탁구는 지난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곧 안방에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그가 코치로 긴급 투입됐다. 유 감독은 “국제 경험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유 코치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유 코치가 눈치가 워낙 빨라 1주일 만에 자신의 역할을 찾아냈다. 최근까지 선수로 뛴 경험이 있기에 선수들이 나보다 유 코치를 더 잘 따른다”며 흡족해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그는 “유 감독님 덕분이다(웃음). 지도자로서는 초보지만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선수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그 부분을 내가 잘 채워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다. 2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없다. 그는 “‘유승민이 들어왔는데도 별것 아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최근 침체된 대표팀 분위기를 끌어올려 줄 수 있다면 난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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