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비디오판독이라던 심판합의제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확한 판정이라는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감독들은 심판합의제를 마치 ‘안 쓰면 나만 손해’인 양 남발하고 있다. 심판합의제가 승부의 결정적 영향을 미칠 때도 있었지만 선수 사기 차원에서 감독이 뭐라도 해야 된다는 식으로 ‘오용’되고 있다.
● 10점차로 이기는 감독이 심판합의제 요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산 송일수 감독은 29일 사직 롯데전에서 11-1로 앞서던 8회말 수비 때 심판합의 판정을 요청했다. 롯데 김문호가 1루에 출루한 뒤, 후속타자 하준호의 좌익수플라이 때 오버런을 했다가 귀루 하는 과정에서 아웃이냐 세이프냐를 놓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 요청으로 판독을 하느라 가뜩이나 10점차였던 김샌 게임이 3분간 지연됐다. 그나마 결과마저 심판의 눈이 옳아 세이프였다.
김문호는 투수 실책으로 1루로 나간 상태였다. 두산 선수들의 타격이나 방어율 등 개인기록과 아무 상관도 없는 상황에서 나온 심판합의판정 요청이라 그 배경이 더욱 애매모호했다. 일각에서는 ‘두산이 6월1일 있었던 롯데의 투수교체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의문도 나왔다. 당시 잠실경기에서 롯데는 14-5로 크게 앞서던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마무리 김승회를 올렸다. 두산 송일수 감독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투수를 대타로 내보내려다가 참았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었다.
그러나 30일 두산전에 앞서 만난 송 감독은 “당시의 보복 차원에서 심판합의 판정을 요청한 것은 아니다. 벤치에서 선수들이 ‘세이프’라고 다 같이 외치는 분위기에서 감독이 가만있을 수 없었다. 1루수 오재일도 사인을 보내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송 감독은 “만약 롯데에서 불편해 했다면 다음부터는 큰 점수 차이에서는 심판합의판정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방송사, “KBO의 리플레이 지연 요청은 없었다”
감독들이 승부처가 아닌 상황에서도 심판합의 판정 요청을 남발하자 가장 난감한 쪽은 방송사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우리가 못 찍기라도 하면 어떡할 것인가? 밑도 끝도 없는 타이밍에 요청을 하면 우리도 난감하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30초가 흐른 뒤에 리플레이를 하는 것에 대해 한 방송사 PD는 “PD들 사이에 암묵적 합의일 뿐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 PD는 “감독이 항의를 하러 나오면 그 감독의 동선을 따라가며 찍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에 리플레이를 틀어주는 것이 중계 패턴이다. 그러다보면 30초가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