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가기 전이랑 갔다 온 후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다 그렇다.
한 선수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기 전에는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자랑스럽게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 앞으로 국가가 부르면 당장 달려오겠다.”
몇 년 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야구 대표팀은 정말 그 선수를 불렀다. 그러나 그 선수는 팀 적응이 우선이어서 오기 힘들다고 했다. 인정한다.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문제는 그런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 최종 엔트리를 발표한 뒤 멤버 구성이 7차례나 바뀌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나. 1라운드에서 탈락한 타이중 참사가 됐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병역 혜택이 없는 WBC는 선수들에게도 구단에도 그리 매력적인 대회가 아니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에 안 오겠다는 선수들 때문에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9월 인천 아시아경기를 앞두고는 너도나도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나섰다. 군 미필 선수는 물론이고 WBC 때 선수 차출에 시큰둥했던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참으로 절묘하고 오묘한 ‘황금비율’의 최종 엔트리가 나왔다. 13명의 병역 미필 선수가 포함됐다. 거의 모든 구단이 최소 1명 이상의 미필 선수들을 엔트리에 밀어 넣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보기 힘든 구성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이번 대표팀에 뽑힌 유원상(LG)과 김상수, 차우찬(이상 삼성), 손아섭(롯데)은 제3회 WBC 멤버였다. 대표팀의 부름에 군말 없이 임했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 애썼다. WBC에 출전한 병역 미필 선수들 가운데 이번에 뽑히지 않은 건 전준우(롯데)뿐이다.
한 야구인은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해도 비슷한 실력이라면 국가를 위해 뛰었던 선수들에게 더 눈길이 가지 않았겠나. 지난 WBC 때 선수 선발 문제로 고생한 류 감독과 기술위원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타이중 참사 후 국제대회에서 병역 혜택을 입은 선수에 대해 향후 몇 년간 대표팀의 부름에 임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당장 2017년 WBC 때 태극마크 기피 현상은 또다시 재현될 것이다. 그런데 WBC에 출전한 선수에게 다음 아시아경기 출전 우선권을 준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다. 태극마크를 두고 흥정하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한국 야구의 수준이고 현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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