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의 사커에세이] 기회는 누구나 동등해야 한다, 성공한 K리거 윌킨슨의 교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8월 6일 06시 40분


얼마 전 호주 출신 수비수 알렉스 윌킨슨(30)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윌킨슨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와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고 2014브라질월드컵까지 다녀온 선수죠. 이전만 해도 국가대표 경력이 전무했던 그가 K리그에서 보인 활약 덕분에 호주대표팀에 발탁됐고, 올 여름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낸 뒤 K리그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지난 월드컵 칠레와의 경기 도중 상대의 슛을 골라인에서 걷어냈던 장면이 화제가 됐습니다. 윌킨슨은 중앙수비치고 키가 그리 큰 편도 아니고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모자란 부분을 성실한 플레이로 만회하는 선수입니다. 당시 호주가 1-2로 뒤져있는 상황이었기에 거기서 더 실점하면 지겠다는 생각에 몸을 날렸다고, 자신은 “그저 적절한 시기, 적절한 장소에 있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다음 주 만 30세(1984년 8월 13일 출생)가 되는 윌킨슨은 월드컵에 나가기 전까지 A매치 출전 경력이 6경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003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나간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지만, 호주 A리그 센트럴코스트 창단 멤버이자 주장으로 7년간 꾸준히 뛰며 큰물에서 뛸 날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마침 같은 호주 출신 수비수 사샤가 성남일화 소속으로 201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AFC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쥐는 걸 보고 K리그를 다시 보게 됐고, 2012년 한국행을 결심했답니다.

사샤와 윌킨슨 모두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된 뒤, 각각 클럽 월드컵과 FIFA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를 밟은 선수들입니다. 반면 우린 2000년대 초반 시작된 해외 진출로 지금은 외국리그에서 뛰어야 대표팀 주전을 얼마간 보장받을 수 있죠. 물론 호주대표팀 주축 대부분이 유럽에서 뛰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대표팀에 발탁되는 건 아니죠.

호주와 한국, 그리고 일본과 이란까지 지난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팀들은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젊은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세 팀은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한 반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좌절로 끝났습니다. 어쩌면 지난 대회 실패가 보여준 건 우리 엘리트축구의 한계였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선임될 대표팀 감독은, 단 한 번이라도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장소’에서 뛸 기회를 얻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노력하고 있는 도전자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기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열렸다는 걸요.

● 정훈채는?= FIFA.COM 에디터. 2002한일월드컵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 안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UEFA.COM 에디터를 거치며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고 있다. 2014브라질월드컵에는 월드컵 주관방송사인 HBS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국제축구의 핵심조직 에디터로 활동하며 세계축구의 흐름을 꿰고 있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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