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은 메이저리그에서 변방으로 통하던 아시아 야구가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 해다. 한국의 박찬호(41)가 14승 8패(평균자책점 3.38), 일본의 노모 히데오(46)가 14승 12패(평균자책점 4.25)로 28승을 합작하며 LA 다저스 팀 내 공동 최다승의 주인공이 됐다. 1995년에 메이저리그에 온 노모는 그해 13승(6패), 1996년 16승(11패)을 올리며 일찌감치 에이스급 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노모보다 1년 일찍 데뷔한 박찬호는 이전 3시즌 동안 5승(5패)에 그쳤기에 1997년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
▽17년이 지난 올해는 류현진(27·LA 다저스), 다나카 마사히로(26·뉴욕 양키스), 다루빗슈 유(28·텍사스) 등 ‘한일 투수 빅3’가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고 있다. 5일 현재 류현진은 12승 5패, 다나카는 12승 4패, 다루빗슈는 10승 6패로 모두 두 자리 승수를 거두고 있다(표 참조). 다나카와 다루빗슈는 팀 내 다승 1위를 달리고 있고, 류현진은 1승차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3명 합해 34승으로 대만의 왕젠밍을 포함해 박찬호와 노모 등 ‘아시아 3총사’가 합작한 2003년의 한 시즌 최다 32승을 이미 넘었다. 대만이 빠졌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아시아 투수들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 온 것이다.
▽올 시즌 전반기만 해도 셋 중 다나카가 돋보였다. 7월 4일까지 12승(3패)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은 물론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달 9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수술 대신 약물 및 재활 치료를 택한 다나카는 부상 이후 처음으로 5일 공을 던졌고 “통증이 없다. 느낌이 아주 좋다”라는 말로 재활이 성공적이었음을 밝혔다.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복귀가 점쳐지고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양키스로서도 7년 계약 첫해인 올해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다. 류현진에게는 한일 투수 빅3의 다승 경쟁에서 선두로 치고 나갈 기회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상대가 부상이라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부상 관리야말로 프로 선수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항목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앞으로 9경기 내외로 등판할 수 있다. 6승을 추가하면 박찬호의 한국인 최다승(18승)과 동률이고, 거기에 1승을 더하면 왕젠민의 동양인 최다승(19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류현진의 올 시즌 예상 승수를 16승(7패)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다나카(13승 5패)와 다루빗슈(14승 8패)보다 앞선다.
▽비용 대비 효율 측면에서 류현진은 셋 중 단연 최고다. 계약 기간 평균 연봉(해마다 연봉이 다름)을 보면 류현진은 600만 달러(약 62억 원), 다나카는 약 2214만 달러(약 228억 원), 다루빗슈는 1000만 달러(약 103억 원)다. 다나카와 비교하면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다루빗슈와 견줘도 절반이 조금 넘을 뿐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한국인 투수는 류현진이 유일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다나카와 다루빗슈를 위시해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구로다 히로키(양키스), 와다 쓰요시(시카고 컵스), 우에하라 고지(보스턴) 등 일본 리그를 주름잡던 선수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일대 다수의 외로운 싸움에서 가장 앞서 있는 류현진, 계약 당시 ‘몸값 대박’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게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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