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규'가 빠지면서 한화 타선의 숨통이 트이고 있습니다. 지용규는 한화 팬들이 '지명타자 이용규'를 줄여서 부르는 말. 올 시즌 한화 지명타자를 맡은 이용규(29)는 16일 경기부터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고, 27일에는 아예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습니다.
이용규가 선발 지명타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한화 타선은 팀 타율 0.327로 9개 구단 중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한화와 계약할 때만해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던 선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사실 '지용규'라는 비판이 향하는 곳은 한화 김응용 감독입니다. 김 감독이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수비가 어려운 선수를 자꾸 지명타자로 내보내는 걸 문제 삼고 있는 거니까요. 김 감독은 15일까지 치른 95경기 중 86경기(90.5%)에 이용규를 지명타자로 출장시켰습니다. NC 이호준(95.3%), 두산 홍성흔(94.1%), 삼성 이승엽(93.1%) 같은 전문 지명타자 선수 수준입니다. 원래 이용규는 재활 문제로 빨라야 5월에 복귀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개막전부터 경기를 뛰었습니다. 그 탓에 올해는 사실상 수비하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타격이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지명타자는 수비보다 방망이가 뛰어난 선수들이 맡는 자리. 하지만 한화는 넥센과 함께 팀 평균 OPS(출루율+장타력)보다 선발 지명타자 OPS가 낮은 팀입니다. 지명타자가 오히려 팀 공격력을 깎아 먹은 겁니다.
넥센은 지명타자 공격력이 팀 타격보다 가장 처지는 팀이지만 한화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넥센은 9개 구단 최다인 12명을 지명타자로 기용했습니다. 지명타자를 '체(體)테크' 목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장기 레이스에서는 선수들 체력 안배가 꼭 필요하다"며 "(강)정호가 휴식이 필요하면 (김)민성이를 유격수로 기용하고 정호가 지명타자로 나오는 식으로 라인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넥센은 주전 선수가 지명타자로 나왔을 때 대신 선발로 나온 선수가 어떤 성적을 올렸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윤석민(29)과 이성열(30)이 각 27경기로 넥센에서 지명타자로 가장 많이 출전했습니다. 윤석민은 1루수 또는 3루수 나왔을 때 OPS 0.917을 쳤고, 이성열도 우익수 수비를 보면서 0.894를 쳤습니다. 염 감독 의도가 맞아떨어졌던 겁니다.
거꾸로 한화는 김 감독이 이용규를 고집하는 바람에 숨통이 막혔습니다. 이용규에 이어 16일부터 지명타자 자리를 꿰찬 김태완(30)은 그 전까지 1루수로 OPS 1.198을 쳤지만 김태균(32)을 넘어서지 못해 출장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거꾸로 지난해 30경기에서 지명타자로 뛰었던 1루수 김태균은 지용규 탓에 체력 안배에 어려움을 겪었죠. 또 수비가 썩 뛰어난 편이 아닌 외야수 최진행(29)도 포지션이 좌익수로 고정되면서 전체적으로 외야 수비가 헐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지용규는 확실히 득보다 실이 더 컸던 겁니다.
메이저리그는 어떨까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한 아메리칸리그 15개 팀은 현재까지 평균 13.2명을 지명타자로 기용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지명타자 돌려쓰기'가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김 감독이 21세기 야구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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